서울 용산구 청파동에서 1년째 중식당을 운영하는 양모(60·여)씨는 푹푹 찌는 더위에 에어컨을 틀었지만 환기를 위해 하루 종일 식당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하지만 가게 안은 손님들로 북적여야 할 점심시간인데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 탓에 빈 테이블뿐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던 양씨는 “가뜩이나 손님도 없는데 방역지침을 따르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문을 열어놨다”며 “델타 변이 전파 속도가 빨라서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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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전국에 폭염특보가 내려지는 가운데, 23일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조치 ‘2주 연장’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들의 고충은 배가 되고 있다. 불볕더위에 에어컨을 틀긴 하지만 서울시 지침에 따라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문을 자주 열어 환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날 국내 신규 확진자 수가 20일째 1000명대를 기록하면서 방역당국은 감염률이 이번주에 50%를 넘길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낮 최고기온이 37℃까지 치솟은 26일 오후 서울 강남역에서는 문을 열어둔 채 영업하는 가게를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자영업자들은 매출이 바닥 난 상황에서도 가게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영업이 중단될까봐 ‘울며 겨자먹기’로 실내를 환기하고 있었다. 손님도 없는데 문 밖으로 냉방비가 줄줄 새는 것을 본 사장님들은 폭발 직전이었다.
하지만 더위에 지친 손님들이 가게 안에서까지 땀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환기하는 일이 어렵다고 고백하는 이들도 있었다. 7년째 치킨집을 운영 중인 김모(59·여)씨는 “요즘은 더위를 식히려고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들이 많아서 문을 열어놓기가 민망하다”며 “오히려 손님들이 먼저 (환기를 위해)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면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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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부와 서울시는 ‘실내 환기’ 관련 서로 다른 권고안을 내놓으면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 서울시는 코로나19 감염 확산 우려로 ‘개문 냉방’을 권고하는 한편, 정부는 여름철 전력 부족 우려로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민간에까지 에어컨 사용을 자제하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5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시민들이 일상에서 환기를 실천할 수 있도록 ‘서울형 환기 생활수칙’을 마련해 발표했다. 이 수칙에는 소음과 같은 특별한 민원 요소가 없는 이상 창문과 출입문은 상시 개방하되, 상시 개방이 어려운 시설은 1시간마다 10분 이상 환기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이 담겼다. 냉·난방기를 가동할 때도 창문 일부를 개방할 것을 권고했다.
특히 산자부는 7월 넷째 주에 전력 예비력이 가장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처럼 지자체의 방역지침과 정부의 전력수급 관리 대책이 엇박자를 내자 자영업자들은 “누구 말에 맞춰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혼란스럽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편 전문가들은 4차 대유행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는 전력난은 둘째 문제이며 감염 확산세를 막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전사태가 나지만 않는다면 지금은 ‘개문 냉방’이 우선돼야 한다”며 “현재는 코로나19 확산세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도 “에어컨으로 인한 대량 감염이 많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최소한 이틀에 한 번은 에어컨 필터를 청소하고 출입문을 1시간에 5~10분씩 열어 바이러스 감염을 막아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