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징수율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신산업 육성이 필요하다며 인하에 반대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기금이 엉뚱한 곳에 ‘쌈짓돈’처럼 쓰이거나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돼 국민 부담만 가중시킨다며 징수율을 낮추라는 요구는 거세지고 있다.
내년말 여윳돈 4조3304억..징수율은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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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자금이 늘어나는 건 기금 사업비(지출)를 초과해 부담금(수입)을 징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예산안에 따르면 기금 사업비는 1조6184억원이었지만 기금 수입은 2조3038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에너지 분야 재정 투자는 2008년 6조5000억원에서 2017년 3조4000억원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예정처는 이 같은 추세에 따라 앞으로도 기금 사업비가 크게 증가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게다가 올해처럼 찜통더위로 전기사용량이 급증하면 전기요금에 붙는 징수액도 늘어 기금 수입은 오히려 더 늘어나게 된다.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무더위가 반복된다면 전력기금 여윳돈은 예상치 4조원 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예정처 김혜미 분석관은 “기금의 효율적 운용과 국민 부담 경감을 위해 법정부담금 인하를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기사업법(51조)에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기금) 부담금이 축소되도록 노력하고 필요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올 여름에 누진제로 ‘요금 폭탄’을 맞았는데 전력기금으로 부담이 더 늘었다는 여론도 많은 실정이다.
하지만 정부는 징수율 인하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국감에서 “신재생 에너지, 에너지 신산업, 에너지복지, 저소득층 지원에 대한 수요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며 “전력기금 부담 요율을 인하하게 되면 효율적으로 이를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전기차 충전서비스 산업 육성(40억원) △에너지신산업금융지원(전기차 구입비 융자지원, 300억원) △국제핵융합실험로 공동개발(273억원) 등을 내년도 전력기금 예산에서 신규 또는 증액사업으로 편성했다.
문제는 이같이 에너지 신산업에 전력기금을 사용하는 것이 기금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점이다. 기금은 전기사업법에 따라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사업 △도서벽지 전력공급 지원사업 등에 사용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예정처 김 분석관은 “전기차 구입비 융자는 기금으로 지원할 법적 근거가 없고 환경부 사업과 중복 지원의 문제가 있다”며 “원자력 기금과의 중복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기금으로 국제핵융합실험로 공동개발 사업을 수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전력기금 관리 회의 올해 ‘0회’..“주먹구구 운영”
하지만 기금이 적절하게 쓰이도록 관리해야 하는 전력정책심의회 회의는 올해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산업부가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열린 14번 회의 중 출석 회의는 4번에 불과했다. 나머지 10번 모두 서면 회의로 진행됐다. “수조원에 달하는 기금이 주먹구구식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게 어 의원의 판단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는 올해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방침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산업부가 신산업을 살린다며 누진제·전력기금 문제를 푸는데 미적대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국민 부담을 고려해 기금 징수율을 대폭 깎든지 애초 취지에 맞게 제대로 집행하든지 결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이란? 한전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위탁을 받아 주택·산업용 등 용도별 전기요금의 3.7%만큼 매월 징수한다. 전기요금 고지서에도 전력기금 항목이 반영돼 있다.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당시 농어촌 전력공급 지원비 등 기존에 한전이 수행하던 공적기능을 대신 수행하기 위해 신설됐다. 이후 원전·석탄화력 등 발전소 인근 주민들에 대한 지원사업이나 블랙아웃 방지용 전력수요 조절 사업(피크 때 공장 가동을 줄일 경우 요금 감면) 등으로 주로 사용돼 왔다. 전기가 남아 전력수급이 양호해지는 등 사업비는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징수율은 그대로여서 여유자금이 수조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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