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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말 예정에 없던 ‘SK그룹 확대경영회의’를 소집해 기존 틀을 깨는 발상의 전환을 주문한 지 100여일만에 그룹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불러모은 최 회장은 사업·조직·문화의 구체적인 변화와 실천계획을 점검한다. 재계 순위 3위 SK그룹에서 느껴지는 위기감은 여느 해보다 높은 상황이다.
11일 재계와 SK그룹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 주재로 오는 12일부터 2박3일간 경기도 이천 SKMS 연구소에서 열리는 SK그룹 CEO세미나에는 주요 관계사 최고경영자(CEO) 4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각사 CEO들은 새로운 사업 모델뿐만 아니라 조직과 문화 등 그룹 전반의 혁신방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토론한다.
최 회장은 지난 6월 SK확대경영회의에서 “글로벌 경영환경의 변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서든데스(Sudden Death·돌연사)가 될 수 있다”며 기존 틀을 깨는 혁신안을 마련해올 것을 주문했다. 그는 당시 “SK그룹은 ROE(자기자본이익률)이 낮고 대부분의 관계사가 PBR(주가순자산비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각종 경영지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 속에 올해는 브렉시트(Brexit), 보호무역주의 등의 대외 변수가 등장했고 국가 경제 측면에서는 수출 감소와 산업 구조조정 등이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SK그룹내 최대 매출을 자랑하는 SK이노베이션(096770)은 유가 급락 여파로 지난해부터 매출이 급격히 감소했다. 정제마진 개선과 사업구조 혁신으로 올해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이 기대되지만 매출 규모를 회복하기 위한 돌파구 마련이 절실하다. 최 회장이 잇따라 중국과 중동의 고위 인사들과 만나 에너지산업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2년간 5조원대 영업이익을 내며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해온 SK하이닉스(000660)는 올해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메모리반도체 주력 제품인 D램 가격이 하락하고 환율 변동성에 노출되면서 상반기 영업이익이 1조원을 간신히 넘기는 데 그쳤다. 메모리시장은 D램에서 3D 낸드플래시로 중심이동하고 있고 그동안 소홀했던 시스템반도체가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맞아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최다 가입자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SK텔레콤(017670)은 실적 부침은 거의 없지만 올해 CJ헬로비전(037560)과의 합병이 무산되며 아쉬움을 삼켰다. 바꿔 말하면 그에 필적하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SK텔레콤의 IoT 전용망 ‘로라(LoRa)’를 활용하기 위한 통신망 인프라나 소프트웨어,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스마트시티 관련 인프라, 빅데이터 등과 관련한 획기적인 사업모델도 기대된다.
특히 이번 CEO세미나에서는 출범 4년째를 맞은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 조직에 대한 재정비 방안도 최종 매듭이 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2013년 출범 이후 인력이 2배 가량 늘어나는 등 양적인 면에서 크게 확대됐다. 최 회장이 수감생활을 하던 시기에 그룹의 중요한 의사 결정을 이끌며 집단지성체제의 모범사례로도 평가된 수펙스추구협의회는 최 회장 복귀 후 재정비 필요성이 제기됐다. 석달 사이에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점을 찾았을지 주목된다.
재계 관계자는 “완전히 새로운 사업모델을 마련하기보다는 기존 사업모델을 보다 효율적이고 시너지가 나는 방향으로 만드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일 것”이라면서 “지난해 사장단 인사폭이 크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세미나가 각 CEO들의 마지막 수험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