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호·풍수해 반복에도…'안전예산' 무더기 삭감

국민안전처 주요사업비 2855억 ↓
풍수해·노후함정 예산 삭감, 어선위치 발신장치 0원
재난전문가 "국민안전 포기한 것"
기재부 "어려운 나라 살림 감안해야"
  • 등록 2015-09-09 오후 7:02:01

    수정 2015-09-09 오후 7:02:01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내년도 안전예산이 무더기로 삭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돌고래호 전복 사고로 10여명이 실종·사망하는 등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가운데 해양구조, 생활안전 등 국민의 생명·재산과 밀접히 관련된 예산이 삭감된 것이어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9일 국민안전처(안전처)에 따르면, 내년도 안전처 총 예산은 3조 2254억원으로 올해보다 870억원(2.6%) 줄었다. 안전처 규모 확대로 인건비·운영비 등은 늘어난 반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주요사업비는 2855억원(15.8%)이나 삭감됐다.

특히 풍수해 관련 안전예산이 대폭 깎였다. ‘재해위험지역정비’ 예산은 올해보다 868억원(18.7%)이나 줄었다. 이는 태풍·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붕괴할 위험이 있는 급경사지나 산사태 위험지역을 정비하는데 사용되는 예산이다.

‘소하천 정비’, ‘우수(雨水)저류시설 설치’ 예산도 올해보다 각각 535억원(20.2%), 168억원(19.1%) 감액됐다. 이들 사업은 제방, 보, 수문 등의 신설·보수나 빗물 관리와 관련된 것으로 상습침수, 가뭄 피해 등을 대비하는데 주로 사용된다. 올 여름 농·어촌에서 가뭄·적조 피해가 속출했지만 내년 예산에는 이 같은 상황이 반영되지 않은 셈이다.

어선위치 발신장치(V-PASS) 등 해양구조 주요예산은 아예 통째로 사라졌다. 브이패스는 30초마다 어선위치를 발신하는 장비다. 그러나 돌고래호 사고 당시 제 기능을 못해 신규 시스템 개발과 함께 기존 장비에 대한 유지·보수가 필요하다는 안전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랐다.

하지만 ‘어선위치 발신장치(V-PASS) 시스템 구축’ 예산은 올해 159억원이 책정됐지만 내년부터는 관련 예산이 아예 없다. 올해로 2011년부터 시작된 구축사업이 끝난다는 이유에서다.

‘브이패스 유지·보수비’ 예산(10억원)도 ‘유지·보수는 선주들 책임’이라는 기재부 심의 결과에 따라 2년 연속 전액 삭감됐다. 해양경비안전본부가 박남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브이패스 4만 260대 중 3103대(7.7%)가 고장난 상태다. 브이패스 고장 선박은 사고가 발생해도 위치확인이 어려워 구조가 쉽지 않다.

노후 함정 대체건조 예산은 작년보다 528억원(36.7%)이 삭감됐다. 돌고래호 실종자 수색 당시 야간투시장비조차 없는 선령 20년 이상의 노후 함정이 출동해 논란이 됐지만 관련 예산은 오히려 깎였다.

소방 분야는 담뱃세 세수 증가 덕에 소방안전교부세가 작년보다 1006억원 늘었다. 그러나 ‘노후소방장비 한시적지원’ 예산(1000억원)이 내년에는 반영되지 않으면서 상쇄됐다. ‘소방정보시스템 구축 비용’ 예산은 3억원(5.2%) 깎였다.

안전처는 “재난대비에 필수적인 안전예산이 곳곳에서 삭감당했다”며 당혹스런 분위기다. 예산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고만 터지면 몰매를 맞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는 불만의 목소리도 들린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한국방재안전학회 상임고문)는 “돌고래호 사고에서 세월호 때와 같은 인재(人災)가 반복됐는데, 안전예산까지 깎는 것은 국민안전을 포기한 것”이라며 “정부가 안전예산을 ‘국민복지’ 예산이자 수조원대의 재난비용을 절약하는 투자로 생각하고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내년에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0%를 넘을 정도로 나라살림이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며 “낚시배 사고는 악천후로 인한 자연재해이지 인재가 아니다. 올해 추경으로 이미 안전예산을 많이 늘린 상황에서 정부투자는 한계가 있고 ‘국민의식 선진화 캠페인’ 쪽으로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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