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태진 공지유 이정현 기자] 윤석열 정부가 지난 2020년 9월 21일 서해 북단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뒤 북한군의 총격에 의해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자진 월북했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공식 사과하면서 정치적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해양경찰청이 사건 발생 2년 7개월 만에 중간 수사결과를 번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신구 권력 간 갈등 양상이 재점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박상춘 인천해양경찰서장이 16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인천해양경찰서에서 ‘북한 피격 공무원 사건’ 최종 수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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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해양경찰서는 16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2020년 9월 진군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뒤 북한 해역에서 총격으로 사망한 해수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 A(사망 당시 47세)씨의 월북 의도를 찾지 못했다”며 “어업지도선 공무원 유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앞서 A씨는 2020년 9월 21일 인천 옹진군 소연평도 해상에 떠 있던 어업지도선에서 실종됐다. 이후 북한 해역으로 표류한 A씨는 하루 뒤인 2020년 9월 22일 북한군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해경은 당시 고인의 채무 등을 근거로 그가 월북을 시도하다 해상에 표류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방부도 이날 브리핑에서 “북측해역에서 발견된 A씨를 북한이 살해하고 불태운 것은 명확하다. 피살된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함으로써 국민께 혼선을 드렸다”면서 “보안 관계상 모든 것을 공개하지 못함으로 인해 많은 사실을 알려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서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도 같은 날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정보공개청구 소송에서 항소를 취하했다. 유족들은 사건 후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냈고, 당시 청와대는 항소했다. 대통령실은 문재인 정부를 겨냥, 유족의 진상규명 요구에 국가가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고 맹비판했다. 국가의 가장 큰 의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특히 (고인의) 자진 월북 의도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게 오늘 발표의 핵심이라고 했다.
2년 전 지난 정부의 판단을 뒤집은 것을 두고 신구 권력 갈등이 재점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통령실 관계자는 “신구 갈등이 아니라 유족의 진상규명 요구에 대해 정부가 응답했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며 “만일 민간인이 북한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피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진 비인권적인 만행이 이뤄졌는데 이게 뚜렷한 증거 없이 자진 월북이라는 프레임 때문에 한 사람의 잘못으로 규정됐다면, 거기에 의도가 있다면 발표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다만 국방부나 해경 자료 외에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보유했던 이 사건 관련 자료는 임기 만료와 함께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15년간 ‘봉인’됐다. 봉인을 해제하기 위해서는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나 관할 고등법원장의 영장 발부가 있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대통령실 판단이다.
대통령실은 일단 관련 소송 등 사법부의 판단을 지켜본 후 대책을 강구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신구 갈등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지난 4월 청와대의 용산 집무실 이전 예비비를 놓고 당시 청와대와 신경전을 벌이며 신구 갈등 양상을 보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