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가 제안한 이른바 ‘명예퇴진론(내년 4월 하야)’이 당론으로 채택되면서 비박계는 사실상 강경기조를 철회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진퇴문제의 공을 국회에 넘긴 만큼 탄핵 부결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줄이자는 판단인 것으로 풀이된다.
명예퇴진론을 당론으로 채택하기 직전 상황은 급박했다. 비박계 수장인 김무성 전 대표는 이날 오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여의도 모처에서 긴급 비공개 회동을 했다. 그 사이 국회 의원회관에선 비박 주축 모임인 비상시국회의가 동시에 열렸다.
김 전 대표와 비상시국회의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회동을 했지만 결론은 같았다. 김 전 대표는 “내년 4월말 대통령의 퇴임이 결정되면 굳이 탄핵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비상시국회에서도 퇴임 시점을 4월30일로 못 박고 대야(代野) 협상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기존 즉각 탄핵 기조를 사실상 철회한 것이다.
이후 새누리당은 의원총회에서 명예퇴진론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만장일치였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밝히고 “이번 일정은 지난 주말 진보와 보수를 망라한 국가 원로분들의 의견도 듣고 한 것이어서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이어 “(4월 퇴진은) 안정적인 정권 이양을 위한 최소한의 대통령 선거 준비 기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탄핵 심판의 종료 시점과도 비슷한 시점”이라고 했다.
김 전 대표도 “여야를 초월한 국가 원로들도 4월 퇴임이 안정적인 정권이양이라고 했다. 의총에서도 당론으로 확정됐다”며 “문제는 당론을 토대로 야당과 협상을 해야 하는데 합의가 잘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9일 탄핵 표결 방침에는 “합의가 안 되면 그때 가서 우리의 입장을 다시 밝히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로써 친·비박 간 오월동주(吳越同舟·서로 적의를 품었지만 협력해야 하는 상황)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오는 9일 전까지 박 대통령이 4차 대국민담화 등의 방식으로 진퇴 시기와 관련해 못 박지 않으면 비박계 내부에서 역풍을 우려해 ‘즉각 탄핵론’이 재점화할 수 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박 대통령 4월 퇴임은) 결국 친박과 비박간 정치적 이해가 서로 맞아서 된 것이 아니겠느냐”며 “비박도 박 대통령이 직접 진퇴와 관련한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이를 명분으로 탄핵 부결에 따른 부담을 덜어 버린 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