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보톡스 진흙탕 싸움 본질은

메디톡스, "대웅 제품과 유전자 염기서열 일치"
대웅제약, "독소 뿜는 유전자 출처 상관 없이 유사"
전문가들, "문제는 관리감독 소홀…소모적 싸움 말아야"
  • 등록 2016-11-08 오후 2:04:56

    수정 2016-11-08 오후 2:04:56

[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보톡스’로 널리 알려진 보툴리눔 독소(毒素)와 관련해 국내 업체들끼리 볼썽사나운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보톡스가 치료제로 쓰이는 외국과 달리 국내는 주로 피부미용에 활용되고있어 소비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있다. 보톡스 전쟁의 내막을 들여다봤다.

◇‘경쟁사가 훔쳐갔다’, ‘자체 발견했다’ 싸움

국내 1위 보톡스 제조 업체인 메디톡스(086900)는 지난 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자사 보톡스 제품에 쓰이는 균주 370만개 염기서열을 모두 공개하며 후발주자인 대웅제약(069620)에게도 이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대웅제약이 상품화한 보톡스 균주의 염기서열 중 실제 독성과 관련된 염기서열이 메디톡스 것과 100% 일치해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균주를 몰래 훔쳐간 게 아니냐는 의구심에서다.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는 “보톡스 균은 발생 지역에 따라 유전정보에 차이를 보인다”며 “미국에서 들여온 메디톡스의 균과 회사 근처 마구간에서 발견했다는 대웅제약의 균의 정보가 일치한다는 데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웅제약은 “보톡스 균은 토양이나 통조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연상태의 균이며 실제로 독소를 만들어내는 유전자는 균의 출처와 상관없이 서로 유사하다”고 반박했다. 대웅제약은 오히려 메디톡스가 미국서 보톡스 균을 들여올 상황이 불명확하니 이것부터 해결하자는 입장이다. 메디톡스는 균을 1979년 미국 위스콘신대 연구실에서 연구용으로 국내에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보톡스 균은 생물학적 무기로 쓰일 수 있어 1974년 이후에는 국가간 이동이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며 “메디톡스가 보톡스 균을 국내에 들여오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보톡스균은 종류에 따라 A~G 7종류가 있는데, 이중 제품으로 만들어진 것은 A, B 등 두 가지다. 전세계 보톡스 제품 8종 중 7종이 A형이다. 보톡스 균의 기원에 대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다. 메디톡스를 비롯해 글로벌 플레이어인 앨러간(美), 입센(佛), 멀츠(獨) 등에서 쓰는 보톡스 균의 고향이 모두 미국 위스콘신대 연구실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불필요한 소모전으로 국내 제약업의 위상만 깎아 내린다는 지적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양측 모두 자신들의 주장에 맞는 논문을 근거자료로 제시하고 있다”며 “보톡스와 관련된 논문은 수없이 많아 현재와 같은 싸움이라면 당분간 불필요한 소모전은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산 보톡스 제품들. 왼쪽부터 메디톡신(메디톡스), 보툴렉스(휴젤), 나보타(대웅제약). (사진=각 사)
◇외국은 치료 목적이 60%, 국내는 미용 목적이 90%

보톡스 독소는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이라는 세균이 만들어내는 신경 독성단백질이다. 1820년대 독일 의사가 익히지 않은 소세지를 먹고 중독 증상이 생긴 사람을 처음 보고하면서 알려졌다. 75년 뒤인 1895년 벨기에 피에르 에밀 반 에르멘겜 교수가 이 독성 물질을 만들어내는 세균을 ‘보툴리눔’이라고 명명했다. 보톡스는 약으로 개발되기 전에는 신경을 마비시키는 ‘독성물질’로만 여겨졌다. 1g만 있어도 100만명을 살상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실제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보톡스 독소를 정제해 생화학 무기로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1980년대부터 이 독소를 소량으로 쓰면 편두통이나 근육질환, 경련 등 신경질환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1989년 미국 FDA는 사시, 얼굴떨림, 반축안면경련 등 신경질환 치료 목적으로 승인했고 2002년 미용시술 재료로 공식 인정했다.

업계 추산 세계 보톡스 시장규모는 약 30~40억 달러다. 앨러간(보톡스)이 약 75% 점유율로 압도적 1위다. 이어 입센(디스포트)이 15%로 2위, 멀츠(제오민)가 7%로 3위, 메디톡스(메디톡신)가 2% 점유율로 4위다. 하지만 국내 사정은 전혀 다르다. 메디톡스가 40% 점유율로 1위고, 휴젤(보툴렉스)이 30%, 앨러간이 10%로 추격 중이다. 이번 싸움의 당사자인 대웅제약(나보타)은 10% 미만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업체가 국내시장을 장악한 이유에 대해 ‘품질 대비 저렴한 가격’과 ‘미용 시장의 기형적 팽창’을 꼽는다.

1990년대 보톡스가 국내에 들어왔을 때 한 번 맞으려면 10~20만원이 들었다. 외국산 제품의 경우 지금도 이 정도 비용이 든다. 하지만 국산을 쓰면 5만~10만원이면 충분하다. 일부 피부과, 성형외과에서는 특정 시술을 받으면 보톡스 시술을 무료로 해 줄 정도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치료 목적이 보톡스 사용량의 60% 정도를 차지한다. 주민경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신경과 교수는 “외국에서는 사시, 이갈이, 뇌성마비, 뇌졸중 후 근육 강직, 편두통 등 다양한 분야에 쓴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톡스 치료의 85~90%가 미용목적이다. 주 교수는 “너무 자주 맞다 보면 안면근육이 수축돼 표정이 부자연스럽게 된다“며 ”드물지만 내성도 보고되고 있어 미용 목적으로만 보톡스를 쓸 경우 나중에 질병 치료에 보톡스 효과를 보지 못할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관리 감독 부실인데…

보톡스 균은 탄저균보다 더 강한 독성물질이다. 생물무기금지협약에 따라 보톡스 균의 국가간 이동은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국내도 테러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거나 사고로 외부에 유출될 경우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고위험 감염병 병원체는 정부허가 없이 보유하거나 이동할 수 없다. 보톡스 균을 확보하면 생화학 무기법이나 감염병 예방법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와 질병관리본부에 신고를 해야 한다. 이번 보톡스 논란에 대해 한 대학병원 의사는 “보톡스 균의 관리감독이 문제라면 메디톡스가 질병관리본부나 식약처에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며 “메디톡스의 주장대로 대웅제약이 메디톡스로부터 균을 훔쳤다면 메디톡스도 이에 대한 관리감독 소홀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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