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3만여명 달린 中 마라톤, 중계화면에 ‘H형’ SUV가 잡혔다

3일 베이징 마라톤 개최, 에티오피아 선수 1위로 골인
타이틀 맡기도 했던 베이징현대, 공식 스폰서로 참여
中 자동차 시장·소비 바뀌어…마케팅 방식도 변화 고심
  • 등록 2024-11-05 오후 1:12:27

    수정 2024-11-05 오후 1:12:27

[베이징=이데일리 이명철 특파원] 베이징의 미세먼지가 자욱해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나’라고 걱정하던 시기였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가장 큰 대회 중 하나인 ‘2024 베이징 마라톤’이 지난 3일 열렸다.

지난 3일 베이징 마라톤 대회가 열린 중국 베이징 올림픽경기장에서 주요 업체들이 전시 부스를 만들어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명철 특파원)


날씨도 날씨지만 요즘 들어 중국에서 마라톤은 곤란한 주제였다. 일부 언론들은 지난달 허난성 장저우 마라톤 등 당초 계획됐던 대회들이 잇따라 취소됐다고 보도했는데 시기가 리커창 전 국무원 총리 사망 1주기(10월 27일)을 앞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마라톤 대회에서 리 전 총리를 추모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을 우려해 연기했다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는 우려와 달리 성공적으로 열렸다. 날씨는 생각보다 쾌청했고 당국이 우려할 것으로 예상됐던 정치적인 움직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저마다 목표를 갖고 달리기에 뛰어든 3만여명의 ‘러너’(runner)만 있었을 뿐이다.

이날 오전 7시 30분 톈안먼 광장 앞에서 달리기 시작한 참가자들은 자금성의 서쪽으로 향하는 코스를 따라 국가대극원, 군사박물관, CCTV타워, 이화원 등 주요 랜드마크를 거쳐 베이징 올림픽경기장으로 들어오게 된다. 베이징 시내를 마음껏 달릴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고 있다.

지난 3일 중국 베이징 올림픽경기장에서 베이징 마라톤 대회 모습이 중계되고 있다. 선두권 선수 뒤로 타이머카인 현대차의 싼타페(중국명 셩다)가 따라오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명철 특파원)


참가자들이 출발한 지 두시간 가량이 지나자 상위권 선수들의 윤곽이 보였다. 중국 선수인 천톈위가 다른 선수들과 함께 선두권을 형성하며 달려오고 있었다. 약 40km 정도를 지나자 천톈위는 힘에 부친 듯 뒤로 처졌고 에티오피아와 케냐 선수가 1, 2위 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 결승선에 먼저 도착한 선수는 에티오피아의 레미 베르하누 헬러였다. 2시간 9분 16초의 기록으로 대회 남자부 1위를 차지했다. 여자부에서는 케냐의 쳅구노가 2시간 21분 56초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1위를 기록했다.

남자부의 치열한 선두권 경쟁은 올림픽경기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도 중계됐다. 1위와 2위가 각축전을 벌이는 가운데 뒤편으로 비상 깜빡이를 켜고 이들을 뒤따라오는 빨간색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눈에 들어왔다. H자형 불빛이 낯익다 싶었더니 바로 베이징현대가 중국에 출시한 싼타페(중국명 셩다)였다. 중국 마라톤 대회에 왜 현대차(005380)의 SUV가 공식 지원 차량으로 등장했을까.

사실 현대차의 중국 합작 법인인 베이징현대는 십수년동안 베이징 마라톤을 후원한 주요 스폰서였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달리기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수도 베이징에서 열리는 가장 큰 마라톤 대회다보니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후원에 나선 것이다.

베이징 마라톤은 2011년부터 후원을 시작해 2016년까지는 가장 큰 타이틀 스폰서를 맡았다. 당시 베이징 마라톤 대회명도 ‘베이징현대 베이징 마라톤’이었다. 2017년부터는 타이틀 스폰서 역할을 내려놨지만 여전히 공식 파트너로 이름을 올려 후원을 이어오고 있다.

올림픽경기장 내부에는 마라톤 대회 참여자 대상으로 한 다양한 부스가 조성됐다. 베이징현대도 싼타페 두 대를 전시하고 방문객들 대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현장에 있던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싼타페가 중국에 출시돼 판매하다보니 직접 소비자들과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고 소개했다.

지난 3일 베이징 마라톤 대회가 열린 중국 베이징 올림픽경기장의 결승선 구간에 베이징현대를 비롯한 후원사들의 로고가 전시돼있다. (사진=이데일리 이명철 특파원)


올해 대회의 타이틀 스폰서는 중국의 최대 부동산 중개 플랫폼인 베이커가 맡았고 아디다스가 프리미어 파트너로 등록했다. 이들 업체는 아예 큰 전시장을 만들어 방문객들을 맞았다. 이밖에도 식음료, 비타민, 건강기능식품 등을 판매하는 업체들이 다양하게 전시 부스를 통해 홍보에 나섰다.

베이징 대형 행사에 한국 기업이 주요 후원사로 등록된 건 반가운 일이지만 베이징현대도 내부에서는 마케팅에 변화를 줘야 할지 고민도 있다. 중국의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 위주로 전환하는 시점에서 현대차 역시 대응해야 하는데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해야 할지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중국서 열린 베이징 오토쇼에서 아이오닉5를 전시하는 등 전기차를 통한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대차 N브랜드의 이미지에 맞는 방식으로 어떻게 마케팅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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