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집회에 밀린 '수요집회'…충돌 없었지만 '일촉측발 긴장'

정의연, 1445차 수요집회 자리 옮겨 개최
반일 청년들, 소녀상 보호하려 밤샘 연좌농성
이나영 "상처투성이가 돼도 이 자리에 있을 것"
  • 등록 2020-06-24 오후 3:26:43

    수정 2020-06-24 오후 10:06:26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는 수요집회가 28년 만에 처음으로 평화의 소녀상과 떨어진 자리에서 열렸다. 수요집회와 보수단체 맞불집회 참가자들 간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소녀상을 가운데 둔 신경전이 내내 이어졌다. 반일단체 회원들은 비가 오는 날씨에도 보수단체로부터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서로의 몸을 줄로 묶은 채 전날부터 밤샘농성을 하기도 했다.

제1445차 정기 수요시위를 앞둔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서 반아베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 관계자 및 소속 학생들이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단체 관계자들로부터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리 빼앗긴 수요집회…“존엄한 생명의 자리, 맘 아프지만 지키겠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제1445차 정기 수요집회를 24일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 평화의 소녀상 우측에 있는 연합뉴스 건물 앞에서 개최했다. 앞서 자유연대 등 보수단체가 평화의 소녀상 자리에 집회신고를 먼저 해 수요집회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집회 장소를 옮긴 것이다. 이날 집회엔 약 200명이 모였다.

곽호남 615남측위 청년학생본부 대학생분과 대표는 “수요집회는 위안부 피해 당사자이자 운동 주체인 여러 인권운동가들 옆에서 우리가 힘이 돼 드리는 공간”이라며 “역사를 부정하는 세력이 여론을 호도하는 것으로 모자라 소녀상 주위를 물리적으로 빼앗고 소녀상 테러도 서슴지 않는다”라고 성토했다.

평화예술행동모임 ‘두럭’의 고경일 작가는 “약 30년간 우리가 지켜온 곳에서 밀려나 이렇게 싸우고 있다”며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부 거짓말이며 예전부터 매춘 산업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등 모욕적 발언을 하고 있다”며 분노를 표했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시위를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이사장은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고통과 아픔, 상실감이 어려 있는 수요집회는 낙인과 배제, 고난, 죽음을 이겨낸 존엄과 생명의 자리”라며 “또 배상도 받지 못한 채 육체 쇠락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별이 되신 피해 당사자의 넋이 뿌려진 자리”라고 말했다.

이어 “때론 비장한 공연, 때론 즐거운 축제였으며 혁명적 변혁의 자리였던 이 자리는 특정 집단의 소유물이 아니라 시민들이 만들고 버틴 곳”이라면서 “상처 투성이가 돼도 이 자리에 있겠다. 그것이 고인이 되신 피해자의 유지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충돌은 없었지만 여전한 갈등 불씨

이날 수요집회와 맞불집회 참가자 사이에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간간이 말다툼이 오가기도 했다. 소녀상 왼쪽에서 맞불집회를 벌인 보수단체 참가자는 마이크를 잡고 “우리가 집회 신고 1순위를 잡기 위해 다닐 때 숫자도 더 많은 저들(정의연)은 대응하지도 못했다”라며 “저들이 맘 먹었으면 (먼저 신고를) 했지 않겠나”라고 발언했다. 정의연 관계자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해 보수단체 참가자와 가급적 말을 하거나 신체 접촉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소녀상을 둘러싼 신경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소녀상 주위에 질서 유지선을 설치했지만 ‘반아베 반일 청년학생 공동행동(공동행동)’은 23일부터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이날 이들은 우의를 입고 평화의 소녀상 동서남북을 둘러쌌다. 종로구청은 공공조형물로 등록된 소녀상에 대한 훼손 예방 조치를 경찰에 요청한 상태다.

경찰은 소녀상 주변 2m를 포함해 두 집회 참가자 간 13m 간격을 두게 했다. 공동행동 관계자는 “경찰이 해산 명령을 내리고 있지만 소녀상 지킴이들은 물러날 수 없다”며 “소녀상에 정치적 테러를 일삼았던 친일 극우단체들이 소녀상 옆에서 집회를 신고했으니 한 발도 물러설 수 없다”고 전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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