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엔저(엔화 가치 하락)로 인한 국내 제조업 경쟁력의 위축 우려가 높아지면서 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다. 달러-엔 환율은 지난 8월25일 이후 처음으로 110엔대로 올라섰고, 달러-원 환율은 7개월 여만에 1060원을 돌파했다. 가파르게 진행되는 엔저가 국내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커지자, 정부는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엔화 약세 대응 방안’을 내놓기로 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정부가 이달중 발표 예정인 ‘엔화 약세 대응 방안’은 엔화 약세를 활용해 설비투자에 나서는 기업에 세제·금융지원을 해주는 내용이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엔화 약세 상황에서 가격이 싸진 일본의 기계나 장치, 공장 설비 등 고정자본을 수입해 설비투자에 나서는 ‘역발상 대책’을 내놓는 셈이다.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에서 파생되는 각종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일본 외 다른 국가에서 시설재를 수입할 때도 같은 혜택을 주는 방안도 함께 고려하고 있다.
정부는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늘리게 되면 고용이 확대되고, 내수가 진작되는 등 경제의 선순환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엔저를 공격적으로 활용하자는 발상은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 부총리는 지난달 30일 핫라인 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엔저로 수출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를 기회로 활용하는 방안을 각 기업이 강구할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엔저는 설비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로 적극 활용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같은 정부 전략은 엔저에 대응할 뾰족한 수를 찾을 수 없다는 고민이 묻어난 결과다. 원-엔 환율의 경우 한국 원화와 일본 엔화가 직접 시장에서 거래되면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 달러-엔 환율과 달러-원 환율을 통해 간접적으로 계산되는 재정환율로 정부 개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원-엔 환율의 하락을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없다면, 이를 설비투자 확대와 경상수지 흑자 조정 등 우회적인 방식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번 대책에는 자금이 필요한 기업에게 외국환평형기금을 활용한 저금리 외화대출을 지원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정부는 지난 5월부터 외평기금을 활용해 외화대출제도를 운영하면서 지원한도를 최소 100억달러에서 150억달러로 늘렸다. 또 중소기업진흥공단과 수출입은행 등을 활용한 정책자금 지원도 늘리기로 했다. 환율 변동으로 피해를 입는 기업에 유동성 공급 규모를 늘리고, 수출 중소기업에 대출금리를 낮춰줄 예정이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의 환보험료도 일부 감면해줄 계획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엔저 현상이 지속되면 수출과 성장이 위축되고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기존 방어책 외에 엔저를 기회로 설비투자를 확대하는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등 공격적으로 대응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유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