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원내대표는 4.13 총선 직후만 해도 여소야대 결과에 맞게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관례대로 의장직을 맡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으나 지난달 27일 경기도 양평서 열린 당선자 워크숍서 만장일치로 원내대표로 합의 추대되자 말을 바꿨다. 개별 의원에서 당 원내대표로 신분이 달라지자, 5월부터 이뤄질 원구성 협상을 앞두고 기선잡기에 나선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박 원내대표는 다음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대통령이 성공하면 나라가 살고 대통령이 실패하면 나라가 망한다”면서 “박 대통령이 실정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국회의장도 집권여당으로서 중요하다고 국민과 야당에게 협력을 요구할 경우 협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경제실정에 대해 사과하고 협조를 요청하면 국회의장직도 원내 2당인 새누리당에게 양보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동안 국회는 관행적으로 원내 1당이 의장직을 맡아왔다. 단, 국회법상 의장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득표로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22석의 새누리당과 38석의 국민의당이 힘을 합하면 160석으로 의장 선출이 가능하다.
◇국회의장직 대통령과 협의 발상, 3권 분립에 맞지 않아
바로 더민주에서 반발이 터져나왔다. 이재경 대변인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과 국회의장 선출 문제를 협의한다는 발상 자체가 용납되기 힘들다”며 “3권 분립과 의회주의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결여돼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에게 도와달라고 전화했다가 ‘친노라서 안된다’고 면박을 당한 문희상 더민주 의원은 “박 의원이 나에게 한이 있는 것 같다. 친노를 이번에 싹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만 잠겨 있는 것 같았다”고 꼬집었다. 판을 흔들어 국민의당의 존재가치를 과시했지만, 3당인 국민의당이 벌써부터 기고만장한 것으로 보인다는 언론의 지적이 쏟아지자 다시 몸을 낮췄다.
그래도 당 안팎에서 국민의당이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자, 어떤 경우에도 흥정이나 거래는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애국심으로 협상에 임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긴급하게 경제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기에, 나라를 위해 박 대통령의 사과를 전제로 협조할 수 있다고 열어놓은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국민의당이 기고만장하다거나, 제가 선을 넘거나, 줄타기를 하거나, 멈칫하거나, ‘자숙모드’를 하거나가 아니다. 당연히 국회의장은 제1당, 부의장은 2당 3당이 맡아야 하지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대통령의 실패 안정과 사과, 남은 임기의 성공을 위해 대통령께서 협력을 구한다면 의장도 고려하겠다는 게 무슨 3권 분립과 관계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거듭 “대통령께서 진솔하게 사과를 하면서 국회의장도 내가 나머지 임기 2년 동안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하는 의미에서 좀 도와달라 이렇게 얘기할 때, 아마 국민정서도 대통령이 저렇게 진솔하게 나오면 도와주는 것이 좋지 않냐. 이런 여론도 나올 거에요. 그건 두고 봐야지. 제가 국회의장을 임명하는 사람이냐”라고 했다.
◇박 원내대표 발언 3번 바꿔, 너무 왔다 갔다 한다는 혹평도
결국 더민주와 새누리당을 손에 올려놓고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모양새다. 20대 국회를 주도해갈 수 있는 대통령의 사과라는 결과물을 얻으면, 의장직을 새누리당에 내주고 대신 상임위원장직을 3-4개까지 얻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주일 가까이 박 원내대표의 발언이 오락가락하면서,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정리 수순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박지원 답다는 평가부터 원구성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차원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너무 많이 왔다 갔다 한다는 혹평도 있다. 혼란스럽게 보인 것은 사실”이라며 “이제 박 원내대표 본인도 그만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새누리당과 더민주가 각각 3일과 4일에 20대 국회 첫 원내대표로 누구를 선출할지 모르겠으나, 박 원내대표 희망대로 박 대통령이 경제실패에 대해 진솔한 사과를 내놓을 것 같지는 않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정부여당의 참패로 드러난 4.13 총선에 대해, ‘되는 일 없는 양당 체제를 3당 체제로 만들어 준 것’이라고 평가하며 총선 민의와는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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