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의 역주행…'돈풀기=만병통치약' 시대 저무나

'마이너스 금리' 추가부양책 부작용 속출
미국서도 의구심 확산‥돈풀기 한계 부각
  • 등록 2016-02-11 오후 5:01:19

    수정 2016-02-11 오후 5:01:19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약발이 다한 것일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해결사’ 역할을 하던 중앙은행의 영(令)이 서지 않고 있다. 경제가 삐걱거리자 마이너스 금리를 내세우며 추가 부양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역효과만 부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돈의 힘’만으로는 부실한 세계경제를 제 궤도에 올릴 수 없다는 공포감은 확산하는 모습이다.

BOJ ‘엔저 부양’ 순식간에 물거품

가장 당혹스런 표정을 짓는 곳은 이웃 일본이다. 11일(현지시간) 엔화는 달러와 견줘 112엔대까지 하락했다(엔화 값 강세). 엔화 가치가 112엔대까지 치솟은 것은 2014년 11월 이후 1년3개월 만이다. 당시는 엔화가치를 떨어트리려 BOJ가 2차 양적완화(QE)를 발표한 시점이다. 그동안 엔화값을 낮추려던 노력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된 셈이다.
달러-엔 환율, 출처:FT
이날 엔화값 급등은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금리 인상을 늦출 수 있다고 시사한데다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엔화 자산 몸값이 치솟은 결과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엔화 강세가 일본은행(BOJ)가 마이너스금리를 전격 도입한 이후 나타난 현상이란 점이다. 마이너스 금리는 돈을 중앙은행에 맡기지 말고 투자에 나서라는 뜻이다. 경기 침체와 디플레이션(물가하락) 늪에서 벗어나려는 강력한 부양책인 셈이다.

그렇지만 시장은 BOJ 의도와 반대로 움직였다. 엔화값은 치솟고 주가는 곤두박질쳤으며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는 한때 마이너스까지 하락(가격상승)했다.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반영됐지만 결과적으로 시장은 BOJ를 믿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칫하다간 엔화 약세를 바탕으로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던 ‘아베노믹스(아베 정부의 경기부양을 바탕으로 하는 경제정책)’가 좌초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마저 확산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서도 우려 확산‥‘돈의 힘’으로 경제 회복 어려워

유럽과 미국에서도 중앙은행 역할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이 마이너스 금리 폭을 확대했지만 차가운 경기는 제자리를 맴도는 반면 은행권을 중심으로 수익성 악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치방크가 채권 이자도 제 때 갚지 못할 수 있다는 얘기마저 돌 정도다.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부실기업이 늘어난데다 저금리에 예대마진까지 박해졌기 때문이다.

옐런 연준 의장도 의회 증언에서 금리인상 속도를 늦추고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할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법적·실질적 걸림돌이 적지 않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평가했다. 시장에서는 글로벌 경기 우려에 더 주목하는 모습이다.

이런 시각의 바탕에는 중앙은행 부양책만으로 글로벌 경제를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비관론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엄청나게 돈을 풀어 경기부양에 나섰지만 글로벌 경제는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다. 특히 세계의 공장 노릇을 했던 중국 경제는 서서히 식고 있고 수요보다는 공급이 넘치면서 국제유가는 배럴당 20달러 수준으로 내려 앉은 지 오래다.

얼마 전 끝난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대다수 경제학자와 투자 전문가들은 “중앙은행은 더 이상 시장을 구원할 수 없다”며 중앙은행 무용론을 설파했다. 돈 풀기에 의존 하기보다 구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비판의 목소리인 셈이다.

WSJ은 “일본 중앙은행의 대규모 돈 풀기가 투자를 두려워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려 했지만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줬다”면서 “이는 다른 나라에도 교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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