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교과서 ‘교육자료’ 전락 위기…국회 설득나선 교육부

탄핵정국 이어 AI교과서 ‘교육자료’ 격하 법안 법사위 통과
교육부 AIDT 띄우기…“수업 참관 교사·학부모 만족도 상승”
AIDT, 교과서 지위 박탈 시 비용전가·줄소송 ‘후폭풍’ 우려도
  • 등록 2024-12-17 오후 3:36:15

    수정 2024-12-17 오후 7:15:05

[이데일리 신하영 김윤정 김혜미 기자] ‘탄핵정국’으로 현 정부의 국정 장악력이 약화한 가운데 내년부터 도입되는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가 ‘교과서 지위’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 AIDT의 법적 지위를 교육 자료로 격하하는 법안이 야당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교육부는 수업 시연 참관 교사·학부모 대상 설문 결과를 배포하는 등 적극 방어에 나서고 있다.

내년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앞두고 13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 교육혁신 박람회‘에서 초등학생들이 AI 교과서를 사용해 영어수업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17일 국회 법사위는 전체 회의를 열고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야당 주도로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AIDT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 자료’로 규정한다. 법안이 본회의까지 통과되면 정부의 AIDT 정책 추진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된다. AIDT의 교과서 지위가 박탈되면 학교별 채택은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이 되는 탓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법사위 전체 회의에 출석, 해당 개정안에 대해 “교육 발전을 저해하고 교육 현장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법안으로 우려가 크다”고 했다.

속도 조절에 이어 교과서 지위 박탈 위기

당초 교육부는 내년에 수학·영어·정보교과에 AIDT를 적용하고, 2026년 국어·사회·과학·기술·가정, 2027년 역사 등의 순으로 AIDT를 도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도교육감들을 중심으로 속도조절론이 강하게 제기되자 한발 물러나 내년 도입은 그대로 추진하되 국어·기술·가정은 AIDT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사회·과학은 1년 늦춰 2027년부터 도입하기로 조정했다.

이런 속도 조절에도 불구, AIDT의 교과서 지위를 박탈하는 법안이 법사위 문턱을 넘어서자 교육부 내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교육부는 이날 법사위 개정안 통과 직후 입장문 내고 “AIDT의 교과서 지위가 유지돼야 함을 국회에 적극 설명했지만 법안이 의결돼 유감”이라며 “본회의 전까지 국회 설득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뒤늦게 AIDT 띄우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전날 “교육 현장이 변해야 하는 시기라 정치적 상황에 따라 좌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AIDT를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어 최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 교육혁신 박람회’에서 진행한 교사·학부모 설문조사 결과를 이날 공개했다. 이는 박람회 당시 AIDT 수업 시연을 참관한 교사 356명, 학부모 176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것으로 모두 수업 참관 후에 만족도가 상승했다. 교사는 3.97점에서 4.33점으로, 학부모는 3.53점에서 4.23점으로 만족도 점수가 올랐다.

교과서 지위 박탈되면 후폭풍 우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결국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돼 AIDT의 교과서 지위가 박탈당했을 때 예상되는 후폭풍은 만만치 않다. AIDT는 발행사가 학교와 계약한 권수에 따라 구독료로 수익을 올리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재원은 교육청으로부터 나오게 되는데 교과서 지위를 잃으면 학교·학생에게 비용이 전가될 수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 자료로 격하되면 무상·의무교육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며 학생들에게 비용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며 “AIDT 사용도 재정 여건에 따라 시도·학교별로 차이가 나타날 수 있어 교육 격차가 우려된다”고 했다.

개발비용으로 수십~수백억원을 투자한 출판사·발행사들의 줄소송도 우려된다. 한 발행사 관계자는 “AIDT가 교육 자료가 되면 학교별 선택 사항에 되기에 채택률·수요 예측이 불가능하게 된다”며 “AIDT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기에 학교 1곳만 사용해도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라 비용 감당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AI 기반의 코스웨어(교과과정+소프트웨어)로 운영되는 AIDT의 특성상 학교 몇 곳이 구독하느냐와 관계없이 네트워크 관리나 콘텐츠 수정·보완이 필수적이란 얘기다. 또 다른 발행사 관계자는 “정부정책을 믿고 적잖은 비용을 들여 교과서를 개발했는데 수십억원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는 없다. 아마도 법안이 확정되면 적잖은 업체들이 소송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니 교육부가 실물 AIDT가 나온 뒤 시범운영, 본격 도입을 추진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혜영 서울교사노조 대변인은 “교육 당국에서는 웹 전시본만을 제공하고 있어서 교사들은 직접 AIDT를 디지털 기기로 구동해 보지 못한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고 했다.

반면 교육혁신 박람회에서 AIDT 수업을 지켜본 한 교사는 “학생들의 수업 참여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고 이에 맞춰 적절한 지도를 할 수 있다는 점이 AIDT 수업의 장점”이라며 “학생들과의 소통도 원활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AIDT를 학교 현장에 보급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관한 예측 연구(파일럿테스트)가 필요한데 이 부분이 선행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교육부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도입 조정안.(그래픽=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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