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침묵이 악마…우크라이나 전쟁엔 침묵할 수 없다"

첫 한국 방문하는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
러시아 출신, 우크라이나 침공 강력 비판
체코 필하모닉과 내달 24일 내한공연
드로브자크 작품 선봬…후지타 마오 협연
  • 등록 2023-09-19 오후 6:50:00

    수정 2023-09-19 오후 7:32:03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때로는 침묵이 악마일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예술이지만, 인간으로서 해야 할 말을 침묵하지 않고 소리 내 말했을 뿐입니다.”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 (사진=인아츠프로덕션)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많은 예술가가 러시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러시아 출신 예술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71)도 그들 중 하나다. 비치코프는 전쟁이 일어나자 체코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 BBC ‘하드 토크’(Hard Talk)를 비롯해 유럽과 미국 방송에도 출연하며 전쟁에 반대하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나타냈다.

비치코프는 최근 이데일리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예술과 정치는 서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오랜 규칙 같은 말이 있다. 나 또한 정치는 잘 모르기 때문에 평생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한 것에 대해선 “이것은 전쟁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것이지 정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삶과 죽음, 인류의 실존에 대한 이야기는 정치와 다릅니다. 만약 길을 가다 누가 봐도 약하고 힘이 없는 자가 폭력적으로 얻어맞고 있는 것을 보았다면 그대로 지나칠 것인가요? 최소한 경찰에 신고라도 할 것입니다. 나 역시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인류애적 관점에서 인간답게 행동했을 뿐이죠.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대규모 학살입니다.”

비치코프는 동유럽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로 127년 역사를 자랑하는 체코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이다. 20세에 라흐마니노프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린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 런던 심포니, 빈 필하모닉, 라이프치히 게반트 하우스 등 유명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명성을 쌓아왔다. 체코 필하모닉과 함께 오는 10월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공연을 앞두고 있다. 체코 필하모닉의 내한공연은 6번째이며, 비치코프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 (사진=인아츠프로덕션)
공연 프로그램은 체코의 국민 작곡가로 불리는 드보르자크의 곡으로 채웠다. 특히 드보르자크 피아노 협주곡 G단조는 무대에서 자주 선보이지 않는 오리지널 버전으로 연주한다. 일본의 떠오르는 피아니스트 후지타 마오(25)가 협연자로 나선다. 비치코프는 “드보르자크는 체코 필하모닉의 첫 지휘를 맡았던 작곡가 겸 지휘자로 악단과 정말 깊고 밀접한 관계가 있다”며 “드보르자크 피아노 협주곡은 브람스와 베토벤을 합친 듯하면서도 드보르자크의 음악적 특성을 지닌 곡으로 피아니스트에게 매우 어려운 작품이다”라고 설명했다.

비치코프가 한국을 찾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한국과의 인연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 체코 필하모닉의 유럽 투어에서 한국의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함께 협연했다. 비치코프는 “조성진은 정말 대단한 음악적 파트너이자 훌륭한 사람으로 그와 함께한 시간은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고 밝혔다. 한식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그는 “먹어본 적은 있지만 서양에서 현지화된 한식이 아닌 진짜 한식을 먹을 수 있어 기대된다”고 전했다.

흔히 지휘자의 악기는 ‘오케스트라’라고 한다. 비치코프 또한 “지휘는 음악을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연주자들은 강요된 음악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음악이라고 느낄 때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며 “지휘자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서 연주자들과의 의사소통”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처음엔 지휘자로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바쁘고 분주하게 실행하는데 집중하게 되지만, 시간이 흐르면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선 동료 연주자들과 함께하기 위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이 온다”고 덧붙였다.

체코 필하모닉. (사진=인아츠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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