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안 먹혀"…사상 첫 마이너스 유가에 먹통된 증권사 HTS

키움證·한국투자證, 마이너스 가격 인식안돼 투자자 손실
미래에셋·하나금투 등 만기 전 미리 청산…피해회피
CME는 이미 시스템 바꿔…국내 증권사는 시일 걸릴 듯
  • 등록 2020-04-21 오후 3:13:56

    수정 2020-04-21 오후 8:35:05

[이데일리 이슬기 기자] 사상 첫 마이너스권으로 진입한 국제유가에 증권사 시스템이 대응을 하지 못하면서 해외 선물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대부분의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마이너스 가격을 인식하지 못한 탓이다. 다만 증권사에 따라서는 국제유가 선물 만기를 앞두고 미리 청산을 시킨 덕에 손실을 피한 투자자도 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37.63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5월물 WTI는 21일 만기일을 하루 앞두고 공급초과와 수요 부족으로 인해 가격이 마이너스권으로 떨어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문제는 대부분의 증권사 HTS가 마이너스 가격에 대응이 안 되면서 투자자들이 제때 매도주문을 못 냈다는 데 있다.

21일 키움증권(039490)과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간밤 해외선물 거래를 운영하는 이들 HTS는 마이너스 호가를 인식하지 못하면서 투자자들이 낸 주문들이 모두 거부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때문에 투자자들은 WTI가 배럴당 -37달러로 떨어질 때까지 어떠한 주문도 내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손실이 커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키움증권 측은 “미니크루드오일 선물에 국한돼서 문제가 발생됐는데 현재 피해를 어떻게 추산할 것인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투자증권 측은 “유가가 마이너스로 간 이후 시스템을 보완해 21일 새벽 5시 이후로는 정상 거래가 됐다”며 “문의주는 투자자는 있었지만 컴플레인 등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유가가 마이너스로 간 것이 한국시간으로 새벽 3시경이었으니 최소 2시간 동안은 먹통이었단 얘기다.

반면 유가 선물의 경우 규약에 따라 만기일 하루 전 자정에 투자자의 보유포지션을 청산 및 롤오버시키는 증권사도 적지 않았다. 만약 유가 선물을 만기까지 줄곧 보유할 경우 실물 기름통을 인수받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증권사가 이를 지원하지 않아 미리미리 관련 포지션을 청산시키는 것이다. 미래에셋대우(006800)나 하나금융투자, NH선물의 경우 5월 WTI 선물 만기일 하루 전인 21일 자정(새벽 0시)을 전후로 투자자의 보유포지션 청산 및 롤오버를 안내한 뒤 해당상품에 대해서는 자체 시스템상 거래 조치를 내린 바 있다. 미니크루드오일 선물의 경우 만기가 이보다 더 빠른 20일(현지시간)이기에, 이들 증권사들은 지난 17일(현지시간) 기준으로 해당 포지션도 청산시켰다.

마이너스 권으로 유가가 떨어질 것 같자 미리 투자자에게 고지를 해 청산에 나선 증권사도 있다. 이베스트투자증권(078020)은 파생영업팀이 아직 5월물을 청산하지 않은 고객에게 개별 연락 후 유가가 플러스 가격이었을 때 선물을 청산시켰다.

문제는 신한금융투자나 미래에셋대우, 삼성선물 등 극소수의 증권·선물사를 제외하면 마이너스 가격에 여전히 대응할 수 없는 증권사가 많다는 점이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지난 15일(현지시간) 에너지 관련 금융상품이 마이너스권으로 가격이 떨어져도 대처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의 프로그래밍을 다시 짜고 있다고 공지한 것과는 상반된다.

이베스트투자증권 측은 “가격이 마이너스로 내려간 적도 없고 예상했던 바도 아니어서 대응이 어려웠다”며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대책회의를 열 예정인데 실제 시스템을 바꾸기까진 시간이 꽤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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