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금 빼돌린 가상화폐 거래소 '민낯'…정부 “추가사례 쏟아질것”(종합)

  • 등록 2018-01-23 오후 5:29:35

    수정 2018-01-23 오후 6:15:38

한 시민이 지난 19일 서울 중구 명동의 가상 화폐 거래소 벽면에 걸린 시세표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가상 화폐(암호 화폐) 거래소가 일반인 투자금을 쌈짓돈처럼 멋대로 운영한 실태가 드러났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융감독원이 이달 8~16일 거래소에 계좌를 내준 6개 은행을 점검한 결과다. 그동안 ‘깜깜이’로 운영돼 온 가상 화폐 거래소의 부실 관리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도 이런 사례가 대거 추가로 적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3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가상 화폐 거래소 A사는 거래소 법인 명의의 5개 은행 계좌를 통해 투자자 거래 대금 총 109억원을 입금받아 A사가 보유한 다른 은행 계좌로 전액을 이체했다. 이 자금 중 42억원은 다시 A사 대표, 33억원은 사내 이사 명의의 은행 계좌로 옮겨졌다.

B거래소도 법인 명의로 된 4개 은행 계좌에 일반인 거래 대금 586억원을 받아 이 회사 사내이사 개인의 은행 계좌로 전액 이체했다. 이 자금은 또 다른 가상 화폐 거래소인 C사 법인 명의의 은행 계좌 3개에 나눠 입금됐다. 당국은 이렇게 이동한 자금이 C거래소의 특정 가상 화폐를 집중적으로 매입해 시세를 일시적으로 띄우는 등 ‘작전’에 이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D거래소의 경우 투자자에게 법인 명의 계좌가 아닌 법인 계좌의 자(子) 계좌인 가상 계좌를 개설해 여기로 거래 대금을 입금받았다. 그러나 자금 관리가 제멋대로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가상 계좌로 들어온 돈은 사실상 거래소 회원 돈이지만, 이 중 150억원을 작년 12월 회사 대주주인 E사 계좌로 이체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금융 당국도 해당 거래소를 검찰 및 경찰에 통보했다. FIU 고위 관계자는 “검·경 수사 결과, 이런 거래소는 횡령이나 배임, 유사 수신 행위 규제법 위반 등 여러 가지 법에 저촉될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의심이 가는 사례일 뿐인 만큼 수사해 봤더니 불법이 아니라고 결론 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3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가상 화폐 거래소 현장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현행 법규로는 거래소의 이 같은 주먹구구식 운영을 사전에 관리·감독해 소비자 피해를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가상 화폐 거래소 대부분이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업자로 신고해 운영하는 등 제도권 밖에 놓여 있어서다. 다시 말해 정부가 쓸 규제 수단이 뾰족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는 관리 책임을 가상 화폐 거래소에 계좌를 발급하는 은행에 넘기고 있다. 이날 금융 당국이 발표한 ‘가상 통화 관련 자금 세탁 방지 가이드라인’을 보면 이달 30일부터 은행은 가상 화폐 거래소와 금융 거래를 할 때 주의를 기울이고, 투자자 거래 대금을 안전하게 관리하는지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한다. 거래소가 은행에 정보 제공을 거부할 경우에는 자체 판단에 따라 거래를 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소비자 보호 조처는 일반 금융 상품보다 수준이 훨씬 미흡한 것이다. 예를 들어 증권의 경우 증권 투자자가 주식 매수 등을 위해 증권사에 일시적으로 맡긴 예탁금은 한국증권금융이 전액을 재예치 받아 보관 및 관리한다. 투자자가 산 주식도 한국예탁결제원이 맡아 보관한다. 이는 가상 화폐를 매입하기 위해 사설 거래소에 입금하는 투자자 자금과 이들이 맡긴 가상 화폐를 거래소 임의로 관리하는 것과는 딴판이다.

정부는 앞으로도 가상 화폐 거래소의 불법 운영 의심 사례가 대거 적발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은행에 의심 거래를 점검해 보고하라고 한 만큼 향후 이런 사건이 쏟아질 것”이라며 “만사 제쳐두고 분석해서 검찰에 넘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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