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금서는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 일부 보수성향 단체들이 도서관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넣어 특정 책을 빼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미국도서관협회는 매해 9월 마지막 주를 ‘금서주간’(Banned Books Week)으로 운영하고 있다. 전국의 공공도서관·서점·학교·출판사가 참여해 금서를 읽고 토론하는 행사다. 표현의 자유, 독서 및 도서관의 자유를 확대하고 열린 사회로 나아가자는 취지다. 미국이 급격히 보수화로 기울기 시작한 1982년 출발한 이 운동 덕분에 도서관이나 학교, 서점에서 쫓겨날 뻔한 많은 양서가 구제됐다.
우리나라도 2015년부터 금서 읽기 주간을 열고 있다. 도서관·출판 관련 61개 단체가 모인 ‘바람직한 독서문화를 위한 시민연대’(이하 독서문화시민연대)는 독서의 달인 9월 첫째 주(1~7일)를 ‘금서읽기주간’으로 지정하고, 9회째 시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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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 할만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몽실언니’, ‘순이삼촌’, ‘지상에 숟가락 하나’, ‘데카메론’ 등. 교사·작가·평론가 등 전문가들이 추천한 총 46권의 금서 목록을 보면, 후대에 ‘고전’,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만화 ‘아기공룡 둘리’는 아이들의 버릇을 나빠지게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불량 만화로 낙인 찍혔다. 린드그렌의 ‘삐삐 롱스타킹’, 모리스 샌닥의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같은 세계적 걸작도 아이들에게 해로운 책이라는 이력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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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들이 읽어서는 안 될 2008년 국방부 불온도서 목록(23권)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반공·반북 이데올로기에 묶이거나 반미·반정부·반자본주의와 관련된 책이 대부분이다. 2007년 나온 경제학자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국방부 금서목록에 올라 유명해진 책이다. 반미, 반정부 사상을 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강대국 위주의 세계경제에 휩쓸리지 말고, 한국 상황에 맞는 경제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책이 당시 금서로 찍혔다는 사실에 실소가 나올 수 있다.
1992년 발간된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의 ‘즐거운 사라’는 외설로 찍힌 사례다. 자유로운 여대생 사라가 쾌락을 추구한다는 내용이 음란문서에 속한다는 이유로 강의 도중 검찰에 연행됐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한 논쟁을 할 때 단골 예시로 나오는 사건이 됐다.
금서 지정은 진행형이다. 금서하면 국가기관에서 압수, 소각, 판매금지 등의 조치를 한 책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 범위는 더 넓다. 출판을 막지는 않지만, 읽지 못하게 하려는 유·무형의 압력은 여전하다. 출판계에 따르면 한 사회의 특정 세력이나 단체, 이익집단 등이 특정 도서를 지목해 읽지 못하도록 애쓰는 경우, 이 문제적 도서도 금서에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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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연대에 따르면, 도서관은 정보와 사상을 위한 광장으로서 민주주주의 보루다. 시민들은 각자 한 사람의 독자로서 온갖 지식과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해 자기 생각과 판단, 견해를 형성할 자유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단체는 “독서·도서관의 자유가 없다면 정권 입맛에 맞는 여론만 형성돼 민주주의는 발전할 수 없다”며 “흑역사를 되풀이해선 안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