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가상화폐 거품 자초한 정부의 오버액션

  • 등록 2018-01-17 오후 4:33:39

    수정 2018-01-17 오후 4:33:39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가상화폐 규제를 둘러싼 논란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가상화폐시장을 거대한 투전판으로 매도하면서 투기를 뿌리 뽑겠다는 정부와 한풀이라도 하듯 이 시장에서만은 목돈을 벌어 보겠다는 투자자들이 첨예하게 맞서는 형국이다. 가상화폐 투자가 적절한 것인지, 여기에 규제를 가하는 게 타당한 것인지를 놓고 갑론을박도 뜨겁다.

이 시장을 관심있게 지켜봐온 기자로서 할 말도 많고 개인적인 견해를 이 논쟁에 보태고 싶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이런 버블(거품)을 만들어낸 주범인 우리 정부의 무능함과 안일함을 지적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투자자들을 보호하겠다는 미명하에 이미 300만명에 이르는 투자자들이 발을 담그고 있는 가상화폐시장을 아예 폐쇄해 버리겠다며 윽박지르는 정부가 그동안 과연 무엇을 해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가상화폐 가격을 급등시키고 이른 바 `김치 프리미엄`(국내 가상화폐 가격이 해외 가격보다 훨씬 높게 거래되는 현상)을 초래한 근본 원인은 우리 정부의 무관심이었다.

가상화폐 투기의 원흉으로 내몰리고 있는 가상계좌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이나 일본, 독일 등에서는 이미 수 년전부터 가상화폐 투자 계좌를 실명제로 바꾸고 몇 단계의 본인 인증을 거쳐야만 계좌를 개설하고 투자금을 넣고 빼고 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본인 인증 단계에 따라 투자 한도를 설정해 지나친 투기적 거래를 막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실명 확인도 안된 가상계좌를 통해 무한정으로 투자금을 입금하고 충전할 수 있도록 방치한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했다. 그러다보니 가상화폐 거래를 불법으로 규정한 뒤로 중국계 자금이 국내 시장으로 유입됐고 규제를 피해 일본내 검은 돈 일부가 우리 시장으로 흘러 들었다는 얘기도 공공연하게 나왔다. 한국에서 가상화폐 거래소를 세우겠다며 들어와 있는 중국과 홍콩, 일본 법인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지경이 되도록 정부는 이 시장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뒤늦게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까지 입에 올리는 정부의 행보는 이같은 자신들의 정책 실기(失期)를 덮어버리기 위한 오버액션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국내에서의 가상화폐 투자가 왜 이토록 투기적으로 흘렀는지에 대한 차분한 복기와 그에 상응하는 정책 수립 따위는 애초에 기대하기 어려웠던 이유다.

그러면서도 정부 관료들은 가상화폐 투기는 막되 미래 유망기술인 블록체인을 적극 양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무지함까지 드러내고 있다. 네트워크상에 있는 모든 참가자들끼리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사적 거래에 안전성을 높이는 블록체인을 원활하게 유지할 수 있는 윤활유가 바로 가상화폐인데 이를 따로 떼놓고 보겠다는 건 어불성설에 가깝다. 블록체인을 가동하는 인센티브로서의 가상화폐 가격을 안정시키는 일은 중요하지만 이를 가상화폐 거래를 불법으로 간주하고선 블록체인을 활성화하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가상화폐를 제도권 내에 받아들이고 있는 많은 선진국들이 어떤 정책적 판단을 하고 있는지 학습만 해봐도 알 일이다. 시장 하나쯤 없애는 것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 이후 우리가 떠안아야할 비용이 얼마나 클지 가늠해보는 신중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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