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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신경숙 표절사태의 공론화가 한 사람을 문학계에서 끌어내리는 걸로 끝날 일은 아니다. ‘괴물’을 만들어낸 문단이 이번 기회에 스스로를 물갈이하지 않는다면 문학에 대해 진짜 환멸하는 시대가 오는 것도 멀지 않았다”(문학평론가 정문순).
신경숙 작가의 표절사태가 해법 없이 표류하고 있는 가운데 성찰적 대안 마련을 위한 끝장토론회가 열렸다. 15일 문화연대와 인문학협동조합이 공동주최한 토론회 ‘신경숙 표절사태와 한국문학의 미래’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연 토론회는 충분한 논의를 위해 1·2·3부에 걸쳐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어졌다. 이날 시작 전부터 몰려든 취재진은 신경숙 표절사태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아쉬운 것은 문학권력의 핵심으로 비판받아온 대형출판사가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토론회 주최 측이 계간 ‘창작과비평’ ‘문학동네’ 편집위원회에 참석을 요청했지만 이들은 내부 논의 끝에 불참을 결정했다고 알려왔다.
◇“신경숙 상습적 표절, 글쓰기에 내재한 태생적 한계”
신경숙의 표절문제를 2000년에 제기했던 문학평론가 정문순이 1부 발제에 나섰다. 정 평론가는 ‘신경숙 표절 글쓰기, 누가 멍석을 깔아주었나’란 주제를 통해 “신경숙은 진영논리가 설 공간을 잃으면서 문단이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으로 기획하고 새로운 이윤동기를 개척한 문화상품”이라면서 “신씨가 상습표절을 저지르는 ‘괴물’이 될 때까지 문학인들은 적극 동조하거나 방관해 왔다”고 지적했다. 특히 “문단의 기대와 상찬, 일방적 띄워주기와 자신의 실체가 현격하게 괴리됐다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하는 행위가 표절”이라며 “신씨의 상습적 표절은 글쓰기에 내재한 태생적 한계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토론자로 나선 문학평론가 서영인은 “독자들의 분노는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 사태와 같은 상식의 붕괴 때문”이라면서 “신씨가 표절이란 범죄행위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인하는 것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한 특별대우와 닮았다”고 꼬집었다. 문학평론가 김대성은 “문단시스템이 다단계구조와 닮았다”며 “젊은 비평가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논의를 묵살하는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는 신경숙 표절사태 이후 문학권력의 핵심으로 비판받아온 대형출판사의 문제점을 집중논의했다. 핵심은 역사·명예·돈·베스트셀러·마케팅능력·비평가 등 문학자원을 과점한 창비와 문학동네 등이 합당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지적.
2부의 발제자로 나선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는 ‘몰락의 윤리학이 아닌 공생의 유물론으로’란 발제를 통해 “창비와 문학동네가 다음호 계간지에서 특집기사나 좌담회 정도로 (신경숙 표절) 문제를 ‘뭉개거나’ 아전인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면서 “이들이 신씨의 표절과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사과하고 과감히 단절하겠다고 언명하는 것이 맞다”고 요구했다.
특히 “지면개혁과 편집위원 교체 등의 미봉책으론 곤란하다. 창비와 문학동네의 일부 편집위원은 이번에 용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창비와 문학동네는 깊은 성찰을 통해 문단과 공론장의 공기였던 위상을 재인식하길 바란다”며 “게다가 창비는 1980년 창착과비평을 폐간했던 전두환보다 더 위험한 적이 내부에 자라나 있다. 어떤 행보를 취하느냐에 따라 창비와 백낙청은 실로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토론자로 나선 소설가 김남일 실천문학 대표는 “주변에서 말려 이 자리에 나오기가 조심스러웠다”면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활동 이후 창비와의 오랜 인연을 설명했다. 이어 “창비의 파주 행은 상징적”이라면서 “이제 더 이상 창비의 관심 자체가 문학이 아니라고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파주 신사옥은, 좀 심하게 말하면 지난날의 정신과 가치를 신자유주의에 투항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학 장의 위기 참을 수 없는 단계 도달”
3부에서는 문학권력을 교체할 대안적 주체생산이 가능한가에 초점을 맞췄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문학 장의 위기와 대안 문학생산 주체’라는 발제를 통해 “신경숙 표절사태의 가장 중요한 관점은 창작→비평→출판이란 구조화된 공간으로서 문학 장의 위기와 변동”이라면서 “대안적 문학생산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 창비·문학동네 등이 변화하기를 바라는 것보다 쉬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흥미로운 점은 지배적 문학의 장에 위치한 출판사와 문학단체가 스스로 그 안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문학장의 배제와 전복이라는 현재의 지배구조는 창비 vs 문지, 창비 vs 문학동네, 민예총 vs 예총이 아니다. 지배적 문학 장을 보존·유지하려는 창작→비평→출판→문단→담론 진영과 이를 전복하려는 새로운 주체 형성과의 싸움”이라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선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는 “문학이 망해가는 판국에 무슨 문학권력이냐는 반응도 있다”면서도 “현재 지배적 문학 장 세력이 구축되는 과정에서 출판자본과 언론권력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그들이 추진해나간 게 문학의 연성화”라고 꼬집었다. 임태훈 인문학협동조합 미디어기획위원장은 “대안적 문학생산 주체의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없다면 한국문학은 그저 ‘스캔들의 기쁨을 아는 퇴물’로 전락할 것”이라며 “우리가 찾아야 할 전환점은 문단·문예지·출판시스템을 정밀진단해서 잘 수리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