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없는 개혁, 독재인가 혁명인가…한화證 내분사태가 남긴 질문

주진형式 개혁 "고객 보호" 원칙 세웠지만 곳곳서 마찰
서비스선택제 도입에 임직원들 초유의 집단 항명
직원 설득 실패하며 레임덕..그룹과도 불협화음
"충분히 대화했다"지만. 사내게시판 폐쇄 등 통로 막아
  • 등록 2015-10-01 오후 5:01:22

    수정 2015-10-01 오후 6:00:16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주진형식 개혁’은 결국 미완성으로 끝나는 것일까. 거침없던 주진형(사진) 한화투자증권(003530) 사장의 행보가 그룹 견제와 회사 직원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고객(투자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내걸었지만 정작 내부 이해를 끌어내는 데 한계를 나타낸 점이 아쉬운 대목으로 남게 됐다.

한쪽에서는 주 사장이 관습에 젖은 증권사들을 질타하고 누구도 하지 못한 제도를 시도했다고 치켜세우지만, 초유의 항명 사태까지 겪은 그의 2년여간 행적은 산업 전반에 ‘개혁 의지와 소통 노력’이라는 화두를 던졌다는 평가다.

고객 보호 위한 제도지만 내부 설득은 실패

지난 30일 늦은 오후, 한화증권 본사 앞은 퇴근 시간 전임에도 주변을 서성이는 직원들로 부산한 분위기였다. 개중에는 일부 지점장들과 본사 직원들도 있었다.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은 주 사장이 제안한 ‘서비스 선택제’의 도입(5일)을 앞두고 리테일본부 지역 사업부장과 지점장들이 대표실을 항의 방문한 날이다.

서비스 선택제는 주식 투자 시 상담·관리가 필요한 고객과 스스로 판단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고객을 분리한 제도다. 컨설팅 계좌는 프라이빗뱅커(PB) 조언을 통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기존보다 수수료를 다소 높이고, 다이렉트 계좌는 더 저렴한 수수료를 책정하고 고객이 온라인 등을 통해 직접 투자토록 했다.

주 사장은 이 제도를 ‘고객 보호’의 최종 단계라고 자평했다. 지난해부터 임직원들의 과당매매를 사실상 금지한 데 이어 아예 다이렉트 계좌를 분리, 과도한 주식 거래로 수익을 발생하는 기존 주식 중개영업 방식을 뜯어고치고자 한 것이다.

문제는 직원들의 실적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점이다. 인정되는 실적이 줄면 실질적인 임금도 줄어든다. 지점장 등이 제도 도입에 반대한 이유다. 그러나 주 사장은 오히려 페이스북을 통해 “지점 주식 영업직원들은 온라인 고객의 거래 수수료를 자기 실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살아남았다”며 “고객이 알아서 온라인으로 투자하고 있는데 그것을 자기들 실적으로 잡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제1원칙은 고객 우선이고 회사는 단기 이윤과 직원 인센티브를 위해 있는 게 아니라 고객을 위해서 있다”는 평소 지론이 직원들의 반발을 샀고 결국 집단 항명으로 불거졌다.

삼성 눈치 안보는 소신파..한화그룹 눈밖으로

내년 3월 대표이사 임기 만료 후 퇴임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이번 사태로 레임덕이 한층 앞당겨진 모양새다. 불과 2년여 전인 취임 초기만 해도 그는 ‘구조조정의 달인’, ‘Mr. 쓴소리’, ‘증권업계 이단아’ 등으로 불리며 이슈를 몰고 다녔다. ‘매도’ 의견 보고서 작성 권유와 읽기 쉬운 리포트를 위한 사내 편집국 설립, 잘 아는 펀드를 제대로 판매하자는 취지의 코어펀드 도입 등은 신선한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종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내뱉는 일갈은 ‘속시원하다’는 응원과 ‘다소 과격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동시에 사기도 했다.

삼성물산(028260)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리서치센터가 2차례 작성한 ‘합병 무산’ 보고서는 주 사장에 대한 상반된 평가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계기가 됐다. 대부분 증권사들이 삼성의 편을 든 상황에서 소신 있는 보고서였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삼성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화그룹 내부에서는 독자 행보를 보이는 주 사장을 ‘독불장군’으로 여기게 된 시발점이었다. 효율성을 이유로 전산장비 구입처를 김승연 회장의 아들들이 지분을 가진 한화S&C에서 IBM으로 바꾼 것도 그룹과의 갈등을 촉발했다.

◇입지 좁아진 임기말… 개혁 완성 불투명


주 사장의 입지가 한층 좁아지게 된 점은 그가 의도한 개혁의 ‘유종의 미’를 어렵게 하고 있다. 2년여간 심혈을 기울인 서비스 선택제의 시행부터 불투명하다. 여기에 그룹은 이미 후임 대표이사로 여승주 그룹 부사장을 내정하고 11월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사내이사 선임을 추진하고 있다.

주 사장은 평소 외부와의 소통에 자부하지만, 역설적으로 내부와의 ‘소통 부재’가 패착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점은 더욱 뼈아프다. 주 사장은 “2년 동안 매주 직원들을 찾아가 대화했고 수시로 직원들과 등산과 번개를 했다”고 했지만 직원들의 반응은 ‘듣지 않았다’고 말한다. 주 사장이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과 직원 이메일을 차단한 것도 내부 소통을 막는 결정적 계기였다. 이를 두고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개혁의지도 있고 방향은 맞지만 조직원들을 이끌어나가는 리더십이 부족한 인물 같다”라고 평가했다.

내부 반발이 나올 때마다 주 사장은 “방향을 잡고 계획을 세우고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면서 조직을 끌어가는 것은 경영진의 몫”이라고 밀어붙였다. 주 사장의 개혁은 독재였을까 혁명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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