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와 함께 묻어달라" 故 채명신 장군, 서울현충원에 영면

장군묘지보다 8배 작고 봉분도 없는 묘지에 안장
  • 등록 2013-11-28 오후 4:08:46

    수정 2013-11-28 오후 4:11:18

고 채명신 장군 영정.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최선 기자] 베트남전 당시 서른 아홉의 나이로 주월 한국군 사령관을 맡아 군을 지휘한 고 채명신 예비역 중장은 세상을 떠나서도 전우들과 함께 했다.

고인은 “나를 파월 장병이 묻혀 있는 묘역에 묻어달라”는 자신의 유언에 따라 28일 3.3㎡(1평) 면적의 병사 묘역에서 영면에 들었다. 장군 묘지보다 8배 작은 묘지로, 봉분도 없이 그의 이름 석자가 적힌 비석 하나가 세워졌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현충원에서는 고인의 영결식이 육군장으로 치러졌다. 영결식에는 권오성 육군참모총장과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박세환 재향군인회 회장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고인의 숭고한 정신을 기렸다.

권 육군참모총장은 이날 조사를 통해 “고인은 영면에 임하시면서도 전장에서 젊음을 불사른 전우들과 함께 하고자 하셨던 이 시대 영웅이시다”며 “우리 군의 앞길을 밝혀 주시는 호국의 등불이 되시어 영원히 후배들과 함께해 주십시오”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고인은 1965년 월남전 당시 파병에 반대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베트남 밀림 속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는 베트콩을 상대로 한 전쟁이 어려워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사단과 7사단을 철수하겠다는 미국의 압박에 그는 주월 사령관의 직책을 선택했다. 대북 안보 상황이 열악해지는 것을 막아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고 채명신 장군. (사진=국방부)
베트남전에 나선 고 채 장군은 혁혁한 공을 세워 ‘월남전의 영웅’으로 불렸다. 4년 가까이 국군을 지휘하는 동안 고인은 베트콩의 암살 위협을 받고 풍토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헬기로 이동 중 베트콩의 피격을 받아 추락하는 사고를 겪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난 적도 있었다.

전장에서 돌아온 이후 그는 육군 2군사령관을 지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도한 5.16 쿠데타에는 가담했지만, 1976년 유신에는 반대했다. 같은 해 중장으로 예편한 뒤 스웨덴·그리스·브라질 대사를 역임했다.

정부는 군 복무기간 그가 6·25 전쟁과 베트남전에서 세운 공로로 태극무공훈장과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등의 훈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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