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아사히글라스가 하청업체 해고 근로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하고(민사), 불법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한 혐의는 유죄(형사)로 봐야 하지만, 부당노동행위는 아니라고 판단(행정)했다.
|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11일 원고 A씨 등 하청업체 근로자 22명이 아사히글라스의 한국 자회사인 AGC화인테크노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들과 피고가 근로자파견관계에 있다”고 본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피고가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에게 구속력 있는 업무상 지시를 하면서 이들을 자신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시킨 것으로 보인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화인테크노(아사히글라스)는 디스플레이용 유리 제조업 등을 영위하는 회사로, 자신이 운영하는 공장의 TFT-LCD용 글라스 기판 제조 공정 일부를 주식회사 GTS에 도급주었다. GTS 소속 근로자인 원고들은 해당 공정 중 일부 업무에 종사했다.
화인테크노는 GTS 근로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자 이를 문제 삼아 도급계약을 해지했다. 이후 GTS가 소속 근로자 178명을 해고했다.
하청업체 GTS 근로자들은 원청회사인 화인테크노를 불법파견과 부당노동행위로 고용노동부에 고소했다. 또 “자신들과 화인테크노는 근로자파견관계에 있다”며 근로자 지위를 확인해달라는 민사 소송도 제기했다.
대법원은 원고용주가 어느 근로자로 하여금 제3자를 위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경우 그 법률관계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는 당사자가 붙인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그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를 적용했다.
대법원은 “GTS의 근로자들은 화인테크노 관리자들의 업무상 지시에 구속돼 그대로 업무를 수행했다”며 “GTS의 근로자들은 화인테크노의 글라스 기판 제조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화인테크노는 해고 근로자들에게 ‘고용의 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 해고 근로자들은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
이날 같은 재판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파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GTS와 대표이사, 화인테크노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앞서 민사사건의 결론과 마찬가지로 해고 근로자들과 화인테크노간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는 만큼 불법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한 혐의는 유죄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행정사건 측면에서 부당노동행위로는 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같은 재판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화인테크노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부당노동행위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에서 화인테크노의 손을 들어줬다. 화인테크노가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하청업체 GTS와의 도급계약을 해지한 것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만큼 이를 부당노동행위라고 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아사히지회 “공장 돌아간다…노조활동도 인정”
금속노동조합 구미지부 아사히비정규직지회는 이날 대법원 판결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9년의 싸움, 우리가 옳았다. 오늘부터 당장 아사히글라스 해고노동자들은 공장으로 가서 다시 일할 수 있게 됐고 사업장 안에서 노조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며 ”아사히글라스지회가 사용자와 직접 교섭할 수 있는 당사자의 지위에 있다는 점을 확인받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도록 노조법 2·3조를 곧바로 개정해야 한다“며 ”대법원은 불법파견을 인정하면서도 부당노동행위 사건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다. 아쉬운 판단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