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적용을 늦추는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안건에 오르지 못하면서 논의가 무산됐다. 법 적용이 2개월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여야 간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사실상 법이 그대로 시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전문가들은 정부에서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안전관리체계 지원 확충 등 대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그래픽=문승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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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국회 및 정부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날 열린 전체회의 논의 안건에 중처법 유예법안을 올리지 않았다. 전날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예 연장 검토 의견을 밝히면서 이날 법안소위에서 안건에 오를 수 있을지 관심을 모았고 법사위 여야 간사가 전일 저녁까지 이날 안건 상정 여부를 논의했지만, 민주당이 내부 이견차를 이유로 상정 보류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추후 논의 가능성 여부도 불확실하다. 23일 본회의 일정을 두고 여야가 의견 차이를 보이면서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가 열린 지 20여 분 만에 산회했기 때문이다. 이날 상정된 법안 134건도 처리하지 못했다. 국회 법사위 관계자는 “다음 회의가 언제 열릴지 모르지만, 오늘 처리 못한 법안부터 처리해야 되기 때문에 중처법 유예법안을 다음 회의 안건으로 올리긴 어려울 전망”이라고 전했다.
중처법 유예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9월 대표 발의한 것이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처법 적용 시행일을 내년 1월 27일에서 2026년 1월 27일로 2년 늦추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임 의원은 “중소기업은 안전 및 보건관리 전문인력 확보 및 비용 문제가 있고 업무 대부분을 대표가 책임지는 상황”이라며 “중처법 미준수에 따른 폐업 우려가 있는 어려운 환경인 만큼 대비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50인 미만 회원사 641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 중 22.6%만이 중처법 대응 조치를 했다고 답했다. 나머지는 ‘별다른 조치 없이 종전 상태를 유지’(39.6%)하거나 ‘조치사항 검토 중’(36.8%)이다. 중처법 대처가 어려운 이유로는 △안전관련 법 준수사항 방대(53.7%) △안전관리 인력 확보(51.8%) 등을 꼽았다.
홍 원내대표는 전날 “준비 소홀에 대한 정부 사과를 전제로 유예기간 연장을 생각할 수 있다”며 “유예기간을 2년 연장하면, 이 기간 정부의 산업재해 감축 로드맵이 제시돼야 한다”고 정부의 사과와 유예 시 대안을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다만, 노동계와 민주당 내에선 여전히 반발이 커 국회 본회의 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간사인 이수진 의원은 “민주당 환노위 위원은 유예기간 연장에 반대”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내년 법 시행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 같은 산업계의 우려를 해소할 만한 대책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승태 한국경영자총협회 산업안전팀장은 “소규모 기업은 안전관리 관련 전문 인력 채용 자체가 어려운데, 중처법에서 요구하는 14가지 사항을 완벽히 준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이라며 “법안이 시행되면 소기업의 경영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안전관리전문기관을 통해 개별 사업장에 도움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 지원은 일회성에 그치는데 예산을 대폭 늘려 꾸준히 지원해야 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