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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천 검단신도시에서 왕릉 인근지역 건축물 고도 제한 문제로 인해 내년 분양을 앞둔 아파트 단지 공사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가운데 정부가 같은 문제가 있는 구역을 수도권 공급 확대를 위해 추진 중인 3기 신도시 택지지구로 선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왕릉 인근 택지에 아파트 대신 저층 한옥단지 등 다른 건축물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고 있다. 이를 두고 택지 지정 후 뒷수습에 진땀을 빼기보다 처음부터 선정을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정부 및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들어서는 3기신도시 고양창릉지구 동북측 왕릉 인근 구역에 아파트 단지 대신 저층 저밀도의 한옥 주거단지 및 역사문화 테마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구상 중이다.
이는 고양창릉지구 동북측 일부 구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오릉 반경 500m안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서오릉은 창릉·익릉·명릉·경릉·홍릉 등 5기의 조선왕릉이 밀집한 곳이다.
다만 문화재청은 왕릉의 조망 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허가를 내주고 있어 해당 구역엔 고층·고밀도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기 쉽지 않다. 또 LH가 문화재청에서 허가를 받더라도 민간에 해당 용지를 판매할 경우 건설사(행위자)가 직접 다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 김포장릉 근처에서 아파트를 짓다가 고발당한 건설사들도 해당 지자체에서만 허가를 받고 문화재청으로부터 관련 허가를 받지 않은 점이 문제가 됐다.
정부가 서오릉 인근 택지에 아파트 대신 저밀도의 저층 한옥단지 및 역사문화 테마단지를 추진하게 된 배경이다. 택지 민간 판매 여부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LH는 현재 이와 관련한 시뮬레이션 및 유네스코 환경영향평가 등을 진행 중으로, 문화재청과 경관 등에 대한 협의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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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를 두고 정부가 제대로 된 아파트 공급 확대 의지가 있었다면 더 신중하게 택지를 골랐어야 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택지부터 지정해 놓고 문화재 관련 규제를 피하느라 힘을 빼기보다는 처음부터 문화재 주변 환경을 보존하고 아파트를 더 많이 공급할 수 있는 부지를 택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3기신도시인 하남교산도 문화재 영향을 고려하느라 아파트 공급 규모가 예상보다 작아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남교산에 문화재가 대거 묻혀 있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면서 국토부와 LH가 문화재 매장 추정 구역 등에 이미 아파트 대신 공원 및 녹지 등을 조성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결과적으로 아파트 공급은 공급대로 놓치고 문화유산 주변 환경은 환경대로 해치게 된 셈”이라며 “신도시를 지정할 당시부터 보존이 필요한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건축 제한을 받는 지역들을 피해 갔어야 했다. 진정한 공급 의지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신중하게 택지를 선정했어야 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문화재 주변이 비자연 환경이나 비보존 가치 건물로 채워지면 가치가 퇴색한다”며 “문화유산 주변에 주택을 공급하는 정책은 전형적인 근시안적 사고”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