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42년 만에 원자력 정책 자율성 확보..세계 5위 강국 위상 확인

농축·재활용 등 원칙적 가능..연구개발 자율성 확보·경제적 실리도 챙겨
"외부제약서 벗어나..사용후핵연료 등 자율적 관리정책 가능"
  • 등록 2015-04-22 오후 4:24:29

    수정 2015-04-22 오후 5:33:45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경북 경주의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뉴시스 제공
무려 42년 동안 일방적인 통제 상태에 있던 한국과 미국의 원자력 협력 관계가 바뀌었다.

한국과 미국이 4년 6개월간의 장기협상 끝에 22일 타결한 ‘한미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협정’은 핵연료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 대해 원칙적으로 허용 가능성을 열어둔 점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 한국이 세계 5위의 원자력 강국인만큼 미국이 이에 걸맞은 자율성과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은 이로써 최대 현안인 사용후핵연료 처리 등 원자력 분야에서 국가차원의 자율적 관리정책을 세울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양국은 이번 협정에서 △중간저장 △재처리·재활용 △영구처분 △해외 위탁재처리 등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과 관련, 모든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협력방식을 규정했다.

특히 미국 내 강경파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농축·재처리 금지조항)이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 앞서 미국은 아랍에미리트(UAE)와 대만 등에 이를 적용, 농축과 재처리 관련기술을 전면금지한 바 있다.

한국은 이 조항에서 제외되는 만큼 장기적으로 자체적인 우라늄 농축(핵연료 확보)의 필요성이 생길 경우 한미 차관급 상설 협의체에서 이 사안을 논의할 수 있게 됐다.

파이로프로세싱 기술과 소듐냉각고속로(SFR)를 이용한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스템.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재처리 문제의 경우 한국은 핵폐기물에서 원자폭탄의 원료인 플루토늄만 뽑아내는 기존 방식이 아닌, 플루토늄을 포합한 혼합물을 추출하는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를 추진한다.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냉각고속로(SFR)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하는 한국의 차세대 원전기술이기도 하다.

이번 협정은 국내 연구시설에서 미국산 사용후핵연료를 이용해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의 전반부 공정인 ‘전해환원’(Electro-reduction)까지 미국의 허가없이 통보만으로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장기동의’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매 건마다 일일이 미국의 동의를 구해야 했다. 또한 전처리시설과 전해환원 시설을 확장하거나 추가 건설해도 미국에통보만 하면 된다.

송기찬 원자력원 핵연료주기기술개발본부장은 “파이로프로세싱 연구개발은 적어도 절반가량은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다”며 “두 나라는 이 기술의 기술적 타당성과 경제성, 핵비확산성 등을 2020년까지 공동연구해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이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를 본격 생산하게 된 것은 경제적 실리를 챙긴 부분이다. 전량 수입에 의존해온 암 진단용 방사성동위원소(몰리브덴)를 앞으로는 미국산 우라늄을 이용, 국내에서 생산 및 수출하도록 미국의 장기동의를 얻었다.

한국 원자력업계가 미국산 핵물질과 원자력 장비·물품 등을 양국이 동의한 제 3국으로 재이전할 때도 포괄적 장기동의를 적용, 한국 원전수출에도 보탬이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이번 협정은 지난 42년간 외부요인에 제한된 한국의 원자력정책이 자율성을 확보하게 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미국의 일방적인 통제권만 규정돼 있던 체제에서 탈피해 상호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임만성 한국과학기술원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한미원자력협정 TF 자문위원)는 “그동안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국가적 관리정책이 없었는데 앞으로 다양한 방법을 고려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이번 협정은 미국이 신뢰를 보이고 성과를 내는 나라에 대해선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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