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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의 대표이사나 임원 계좌로 고객의 돈이 흘러가는 등 거래소의 위법 정황이 다수 포착되고 거래자의 개인 거래를 장부로 담아 관리하는 일명 ‘벌집계좌’가 횡행하는 데도 은행이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자 금융당국이 칼을 꺼내 들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8일부터 16일까지 9일간 농협·기업·신한·국민·우리·산업 등 6개 은행에 대한 가상화폐 현장점검 결과는 심각했다. 마약대금 등 불법 자금이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해 국내로 반입된 의심사례가 있었고 가상화폐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을 상대로 거래소의 사기 행위와 유사수신 행위 등이 횡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위원회와 금융정보분석원(FIU), 금융감독원은 현 가상화폐 거래소의 운영과 이를 둘러싼 불법 행위가 수준을 넘었다고 판단하고 자금세탁거래를 방지하는 강력한 대책을 가이드라인에 담아 이달 30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시중은행 전부와 저축은행 등 2금융권까지 모두 적용된다. 사실상 가상화폐 불법 거래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거래소를 직접 제재할 수단이 없는 당국은 결국 ‘은행 압박’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이를 통해 금융당국이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전방위 옥죄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EDD와 STR로 불법·사기 행위 ‘원천봉쇄’
당국이 가상화폐 거래소의 불법행위와 사기 행위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꺼낸 것은 ‘금융회사의 고객 확인(EDD) 의심거래보고(STR)’다.
우선 EDD 의무가 강해진다. 은행은 금융거래 상대방이 가상화폐 거래소인지를 우선 식별해야 한다. 현장 실사를 통해 확인 작업을 해야 한다. 확인한 뒤에만 법인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전자상거래업이나 통신판매업 등 특정 업종을 영위하거나 단시간 내에 다수 거래자와 금융거래를 하면 상세히 조사해 보고해야 한다.
SRT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와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자금세탁을 예방하는 조치다. 은행은 의심거래를 모니터링하고 FIU에 보고해야 한다. 거래소 이용자가 거래소 계좌에 하루 1000만원, 7일 2000만원 이상 입금하거나 반대로 돈을 빼내면 의심거래로 본다. 하루에 5회, 일주일에 7회 이상 금융거래가 있으면 이것도 의심거래로 보고해야 한다. 거액이 오가거나 거래가 지나치게 자주 이뤄지면 이런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해 은행이 FIU에 보고토록 한 것이다.
‘은행 압박’ 노림수는…거래소 감시 강화
당국은 법인 계좌 취급업소에 대해 은행의 보고가 있는 대로 은행연합회 정보에 등록해서 개인별 의심 거래를 철저히 파악하도록 할 방침이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번 금융 부문 대책에 따라 가상화폐 거래에서 자금 세탁, 탈세 등의 불법 행위에 활용될 여지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부위원장은 “자금 세탁방지를 위한 자료 제출 요청에 협조하지 않은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해 은행이 계좌 서비스 중단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며 “자금 세탁에 악용될 위험이 큰 가상화폐 거래소를 사실상 퇴출하는 효과도 나타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은행으로서는 가상화폐 거래 관리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당국은 이 또한 은행이 자체로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 30일부터 가상화폐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를 개시하는 은행들로서도 착잡한 상황이다. 지난해 7월 서비스를 중단한 KB국민은행은 내부적으로 서비스를 재개하지 않기로 했다. 기업은행 역시 당장 신규 계좌 서비스를 시행하지 않기로 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이미 지난 19일 가상화폐 담당 부행장들을 소집해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며 “가상화폐 신규 가상계좌 개설 여부는 시장의 안정화 추이를 보면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