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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 구조선에선 잠수부들이 쉼 없이 물로 뛰어들었다. 잠수부들이 물로 들어가면 가이드라인이 연결된 둥글고 붉은 부표가 물 아래위로 오르락 거렸다.
“왜 하필 지금이냐고, 물도 차고 탁한데 조금만 지나면 물도 맑아질 것인데…”
허재균(49) 선장은 배 밖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서해와 남해가 맞닿아있는 이곳 진도 앞바다는 1년 중 50여 일 정도만 물이 맑다. 뱃머리 넘어 내려다본 물밑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수면에 맞닿아있는 해초조차 뿌옇게 보였다.
“섬들 사이 물밑으로는 돌들이 있어. 조류가 세면 바닥을 뒤집어놔서 물이 흐리지. 맹수처럼 빠르다고 맹골수도라 부른다는 얘기도 있어. 쉽지 않을 거야.”
구조 현장 인근의 바지선에 모인 배들의 선장과 사무장들은 모여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주를 가려면 저기 보이는 병풍도 바깥쪽으로 돌아갈 수도 있어. 그런데 맹골수도를 지나가는 게 한 30분 정도 더 빨라. 그래서 이곳을 지났겠지.”
하선희(59) 사무장은 멀리서 수려한 정경을 자랑하는 병풍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에서 배로 50여분, 약 20㎞가량 떨어진 팽목항은 이른 아침부터 통곡의 바다였다.
전남 진도 해안가에 세월호 희생자 확인을 위해 만든 신원확인소는 이날 오전부터 시신에 메겨진 번호를 부르는 목소리와 바다에 삼켜졌다 육지로 돌아온 이들이 남긴 가족의 오열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날 구조대가 찾은 실종자 수십명 중,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없었다.
이날부터 진도 실내체육관 스크린에서 사고 현장에서 인양된 시신의 특징이 적힌 종이를 촬영한 화면이 방송됐다. 이 화면이 나오면 일시에 모든 가족들의 눈이 쏠리고 어딘가 한 곳에선 오열이 터져 나온다.
이날 오후 진도 실내체육관 입구에는 “저는 어쩔 수 없는 어른이 되지 않겠습니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등장했다.
안산에서 온 한 고등학생과 진도 실내체육관에 머물던 여학생이 붙인 것이다. 이들은 세월호 침몰 참사 앞에 민낯을 드러낸 정부와 이기적인 어른들을 비난했다.
이들은 대자보에 “재난사고 어쩔 수 없었다. 무능해서 어쩔 수 없었다. 기자가, 경찰이 직업이라 어쩔 수 없었다. 아는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돈이 많이 들어 어쩔 수 없었다. 지위가 높으신 분이라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내 나라가 대한민국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