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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대웅 기자] 강력한 부양정책으로 일본 경제를 디플레이션에서 끌어내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경제 회복에 따른 자신감을 바탕으로 군사대국의 야망을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외면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방문 중인 아베 총리는 오는 29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앞두고 있다. 아베노믹스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통큰 모습을 과거사 문제 해결에서도 보여줄 것인지에 세계인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지만, 이에 앞서 27일 하버드대학 공공정책대학원(케네디스쿨) 강연에서 아베가 보여준 모습은 실망 그 자체였다.
아베 총리는 하버드대학 강연에서 군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이 문제를 생각하면 개인적으로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 어떠한 사과나 사죄의 표현이 없어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는 비난이 일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성노예와 관련한 일본군의 역할을 왜 계속 부인하는지를 묻는 학생의 질문에 아베 총리는 “현실적인 지원”을 하는데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특히 아베는 건물 앞에서 그를 기다린 종군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과거사 반성을 촉구하는 시위대를 피해 뒷문으로 입장해 반감을 키웠다. 이 할머니도 “거짓말만 하는 아베를 만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원망스럽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때문에 곧 있을 의회 연설에서도 아베 총리가 과거사 문제에 모호한 입장을 취할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는 아베의 미국 방문 성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표면상으로 한국, 중국과도 협력관계 구축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달에는 3국의 외교장관이 만나 “가장 빠른 시기에 3국 정상회의가 개최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 수장이 왜곡된 역사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이같은 노력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즉, 아베 총리가 변화된 역사인식을 원하는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해야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도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3년 가까이 열리지 않고 있는 3국 정상회의 개최의 성사 여부가 여전히 불투명한 이유다.
공교롭게도 이날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하며 아베노믹스에 대한 우려감을 표했다. 곳곳에서 아베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가 터져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