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갤S5 조기 출시를 바라보는 씁쓸함

  • 등록 2014-03-27 오후 7:11:41

    수정 2014-03-27 오후 7:11:41

[이데일리 박철근 기자] 최근 며칠새 정보통신기술(ICT)업계에서는 삼성전자(005930)의 ‘갤럭시S5’(갤S5) 조기 출시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삼성전자가 공식적으로 밝힌 글로벌 출시일은 4월 11일이지만 국내 이동통신사들이 이보다 약 보름 앞서 미리 출시할 수 있다는 설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이같은 논란은 지난 26일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이 “조기 출시는 없다”고 밝히면서 불식되는 듯했다. 하지만 SK텔레콤(017670)(SKT)이 27일 전격 출시를 발표하면서 신 사장의 입장이 머쓱하게 되어버렸다.

SK텔레콤은 고객의 단말기 선택폭 확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갤S5의 조기 출시를 단독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내달 5일부터 SKT의 영업정지가 시작된다는 배경이 깔려 있다.

4월 5일부터 5월 19일까지 이어지는 45일이라는 긴 시간의 영업정지를 앞둔 SKT가 단 10일 만이라도 소비자 관심이 높은 갤S5를 내세워 신규 고객 유치 및 기기변경 등 자사이익을 위해 제조사와 협의 없이 시장에 출시한 셈이다. 삼성전자는 SK텔레콤의 이번 결정에 당혹스러워하면서 유감을 표명했다. 올해 경영실적의 절대비중을 차지하는 전략 제품이 흔한 신문·TV 광고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제품이 시중에 유통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로서는 국내 이동통신 시장에서 SKT의 절대적인 지배력과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스마트폰 전체 매출의 5% 남짓한 국내 시장때문에 95% 매출이 발생하는 해외시장에서의 신뢰도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수차례 4월 11일을 공식 출시일로 못박아왔다. 이런 약속은 한국에서만 보름이나 빨리 선보이게 되면서 공언(空言)이 되어 버렸다. 향후 해외 이통사들도 조기 출시요구나 불만제기 등을 할 여지가 그만큼 많아졌다.

SKT로서도 스마트폰 유통시장 질서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앞으로 KT(030200)LG유플러스(032640)도 특정 제조사의 전략 제품을 ‘고객의 단말기 선택폭 확대’라는 명분으로 아무 때나 출시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보면 결국 스마트폰 유통 시장 자체가 혼탁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갤S5의 조기출시는 영업정지를 앞둔 내수기업(SKT)의 이해관계와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글로벌 기업(삼성전자)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번 사례에 관해 법적인 시시비비를 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사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위가 시장 질서를 흐릴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한 대기업의 결정에 씁쓸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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