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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강신우 기자] 백년대계(百年大計)란 말이 무색하다. ‘미봉책’ 연금 개혁이 잦아지고 난항을 겪다보니 공적연금(국민·공무원·군인·사학연금)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당장 지금 낸 보험료를 30년 이상 지난 먼 미래에 받을 수 있을지 등부터 불신이 증폭되고 있다.
최근 연금 개혁은 그 ‘하이라이트’라 할 만하다. 여·야·정·노 등 각 주체가 어렵사리 합의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이 4월 임시국회에서 끝내 처리되지 못했다. 직접 이해당사자인 공무원집단이 느끼는 불확실성은 극에 달할 가능성이 크다. 여야가 공무원연금 합의에 끼워넣은 국민연금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세대의 노후를 미래세대가 책임지는 세대간 부조 형태인 국민연금 제도를 자주 바꾸면 세대간 갈등을 키울 우려가 상당하다.
공무원연금 개혁 불발…연금 불확실성 극에 달할듯
6일 국회에 따르면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해 합의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의 4월 임시국회 처리가 결국 무산됐다.
여야는 ‘공무원연금 개혁 재정절감분 20%를 공적연금 강화에 사용하고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의 명목소득대체율 목표치를 50%로 한다’는 당초 실무기구 합의사항을 어떻게 명시할 것인지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오랜기간에 걸친 연금 합의가 막판 여야 정쟁 탓에 물건너갈 위기인 것이다. 5월 임시국회에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는 다시 시도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장담할 수만은 없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롤러코스터를 타긴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007년 노무현정부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잦은 개혁도 불확실성은 키우는데 한몫했다. 지난 1995년 첫 개혁 이후 세차례 이뤄졌고, 이번에도 처리된다면 네번째다. 최소 5년에 한 번 꼴로 개혁 논의가 이뤄진 셈이다. 이번 역시 5~10년 후 다시 해야 하는 수준이란 게 전문가들의 냉정한 시각이다.
가입자가 2000만명이 넘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은 더 심하다. 최근 정치권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지급률×가입기간) 40% 개혁이 현실화된 2007년 이후 8년 만에 다시 50% 인상을 추진하면서 여실히 확인됐다.
2007년 국민연금 개혁은 4년 가까운 협의 끝에 이뤄진 결과다. 노무현정부가 2003년 당시 제1차 재정계산 후 국민연금법 개정안(소득대체율 60%→50%, 보험료율 9%→16%)을 낸 이후 우여곡절 끝에 보험료율은 그대로 두고 소득대체율을 더 깎는 식으로 결론이 났다. 이를 통해 재정계산 때 나왔던 기금고갈 시점(2047년)이 13년 더 늦춰졌다. 전문가들은 공적연금 중 국민연금의 재정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평가한다.
2007년 2차개혁의 9년 전인 1998년에는 이미 국민연금 1차개혁이 있었다. 당시 보험료율은 9%로 동결되고 소득대체율만 70%에서 60%로 깎였다.
만에 하나 8년 만에 3차개혁이 이뤄진다면 가입자의 불신은 더 커질 전망이다. 특히 5년 단위의 연금 재정계산에 따른 게 아니라 정치권의 즉흥적인 결정에 따른 것이란 점에서 더 그렇다. 한 연금 전문가는 “연금을 더 주겠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있겠느냐”면서도 “다만 연금액을 더 받고자 보험료를 더 내도 또 개혁을 해 다시 깎이지는 않을지 불안한 게 논란의 핵심”이라고 했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번 연금 개혁 논란으로 공적연금 전체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것 같아 우려된다”면서 “국가가 계속 공적연금에 칼을 대면 국민은 권리가 아니라 사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배준호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3년 이후 국민연금 신뢰도를 공들여 회복시켰는데, 이번에 엉뚱한 기대감만 불어넣어 불신을 키웠다”고 했다.
세대간 갈등 심화 불 보듯 뻔해…사회동력 상실 우려
공적연금 신뢰가 급격히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사회에 미치는 후유증은 어마어마하다는 관측이 다수다. 세대 간 갈등부터 불 보듯 뻔하다. 당장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맞추자는 이번 논의부터 갈등의 뇌관이다. 적정 보험료율을 두고 전문가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지지만 본질은 현재세대가 ‘조금’ 부담하면 미래세대는 ‘더 많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부담을 미래에 전가하려는 경향이 더 강하다는 점이다. 국민연금 2차개혁 당시 현재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는 대신 미래 소득대체율을 더 깎겠다고 합의한 게 대표적이다. 국회 한 관계자는 “일반 직장인·자영업자에게는 사회보험료도 일종의 준조세로 인식된다”고 분석했다. 세대 간 갈등이 심화하고 공동체 의식이 없어지면 우리 사회 전반에서 동력을 잃을 수 있다.
‘불신 사회’는 언젠가는 또 있어야 할 공적연금 개혁의 장을 방해할 가능성도 있다. 정작 기금 고갈을 앞두고도 개혁 여론이 모이지 않을 우려도 있다는 얘기다.
정창률 교수는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놔둘 정부는 없기 때문에 절대 바닥을 드러내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만에 하나 고갈 위기에 가까워진다면 각종 주식과 채권에 투자된 연금의 자산가치가 떨어지게 되고 덩달아 기업가치도 급락하게 된다. 그야말로 국가부도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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