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김한영 수습기자] 정부가 지난달부터 마약성 향정신성의약품 구매 혹은 건강보험료 부정 수급을 막기 위해 `신분증 의무 확인`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사각지대가 여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암암리에 위조 신분증이 제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이 때문에 이러한 범죄에 대한 사전 단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조 신분 이용 범죄 잇달아…매년 증가세서울북부지법은 지난달 31일 주민등록법과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A(60)씨에게 징역 10월에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고 11일 밝혔다. A씨는 2016년 11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서울 종로구와 중랑구 등지의 약국에서 본인과 타인의 명의로 마약성 수면제인 졸피뎀을 총 3289정 처방받은 혐의를 받는다. 인천지검 부천지청도 지난달 지인의 주민등록번호로 마약류 수면제 982정을 30회에 걸쳐 처방받은 30대 여성을 구속기소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 (그래픽=김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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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다른 신분으로 의약품을 처방받는 등 사례가 반복되자 정부는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20일부터 병원이나 약국은 진료나 의약품 판매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기 이전에 신분증 등으로 환자의 본인 여부와 건강보험 자격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문제는 신분증 거래나 위·변조 업체에 의해 이러한 정책이 무력해진다는 점이다. 이데일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민증’(주민등록증의 줄임말)을 검색하자 운전면허나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을 위조·제작한다고 광고하는 불법업체 계정이 줄지어 등장했다. 오픈채팅방 기능으로 이들 중 한 업체에 실제로 신분증을 제작하는지 묻자 브로커는 “20(만원)에 제작한다”며 “결제 확인 후 배송까지 3일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이나 가게에서 사용하는 신분증 검사기에도 안전하다”며 사진과 이름 등 인적사항을 물었다. 당연히 이 내용이 본인의 정보인지 확인하는 절차는 없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신분증을 포함한 공문서 위조 혐의로 검거된 사건은 2949건으로 전년(1371건) 대비 두 배 이상 크게 늘었다. 검거인원 역시 2635명에서 4204명으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신분증 등 공문서 위조의 경우 관련 범죄를 적발하기 이전엔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제 범죄는 더 많을 것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의료현장은 신분증 도용과 위·변조에 속수무책…“확인할 길 없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신분증 도용이나 위·변조에 대응할 길이 마땅치 않다고 토로한다. 11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의 한 병원 데스크에는 ‘진료 전 신분증을 꼭 제시해주세요!’라고 적힌 홍보 포스터가 부착돼 있었다. 원무과에서 환자를 상대하던 한모(44)씨는 “환자들에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면서도 “신분증 리더기(판독기)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기관에서도 이제 리더기를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병원이 쓰고 있을리 있겠느냐”며 “신분 확인절차는 예전과 동일하다”고 했다.
| 인천 서구 국제성모병원 전광판에 신분증 지참 안내문이 나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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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70대 약사 이모씨는 “몇 년 전 마약(향정신성의약품) 처방전을 복사해서 의약품을 받아가거나 신분증을 위조한 사람이 있었다고 공단을 통해 전달받았다”며 “이 일 때문에 범죄성 관여 조사에 대한 보고서를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씨는 이날 손님들의 신분증을 추가로 확인하지 않았다. 그는 “처방전에 주민번호가 그대로 나와 있고 신분증을 위조해도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신분증 도용과 위·변조를 적극적으로 단속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신분증 위조와 같은 공문서 위조는 예전부터 발생했으므로 사건을 조기에 발굴하고 단속해야 했다”며 “해외 수사기관, 플랫폼 업체와 적극적으로 공조해 신분증 위·변조 업체를 단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불법 흥신소의 광고와 범죄도 조기 단속으로 많이 사라졌다”며 “우수한 사이버 수사능력을 활용해 신분증 위·변조 업체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