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 1순위는 ‘성과주의’ 정착…연봉제 도입 놓고 금융권 갈등 예고

  • 등록 2016-01-07 오후 4:36:56

    수정 2016-01-07 오후 6:17:28

[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서울 중구의 한 시중은행에서 일하는 조모(33)씨는 최근 선임 차장 A씨와 얼굴을 붉혀야 했다. “전산 작업은 스스로 하라”는 조씨의 말에 차장이 언성을 높이면서 말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평소 조씨는 거래처 관리를 이유로 자주 자리를 비우는 A차장에게 감정이 좋지 않았다. 가뜩이나 지점 인원이 줄어 예정된 퇴근시간을 넘기기 일쑨데 A차장 일을 조씨가 떠안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A차장 같은 베짱이 은행원을 솎아내기 위해 ‘성과주의’ 도입을 올해 금융개혁 1순위로 정한 금융당국이 구체적인 액션플랜 짜기에 들어갔다.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는 금융사들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지금의 호봉제 방식에 기반을 둔 임금체계가 빨리 개편돼야 한다고 보고 개인 성과에 따라 연봉을 매기는 성과연봉제 도입에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은행들은 정부의 정책 취지엔 공감하면서도 선뜻 밀어붙이지 못하고 있다. 금융노조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연봉제 도입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정부는 성과제 도입을 재촉하고 노조 반발은 거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 정부, 성과제 구체적 방안 마련

올해 ‘거친 개혁’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힌 임종룡 위원장은 1순위 금융개혁 과제로 ‘성과주의 문화’ 정착을 꼽으며 연공서열과 호봉제에 기반을 둔 은행들의 고(高)임금 구조에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한 상태다. 금융위 고위관계자는 “그동안 성과주의 도입을 말로만 했지만 금융개혁 입법이 마무리되는 대로 구체적인 액션을 취할 것”이라며 “조만간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성과주의 도입을 추진할지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성과주의 도입에 적극적인 건 호봉제가 바탕이 된 임금체계가 금융사들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굳이 능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임금이 오르다 보니 은행 지점마다 A차장 같은 베짱이 직원이 1~2명씩은 꼭 있다”고 말했다.

당국이 판단하는 ‘성과주의’는 직원 개인의 업무 성과를 연봉에 연동하는 방식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집단 평가로 성과급을 지급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시중은행들은 개인 평가가 아닌 지점이나 부서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성과급을 지급하는 성과급제를 갖추고 있다. 일하지 않는 베짱이 직원이 얼마든지 지점 실적에 묻어가는 무임승차가 가능한 셈이다. 정부는 임원급에 한해 적용하는 개인성과 연봉제가 일반 직원까지 확대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성과중심의 임금체계로 바뀌지 않으면 은행으로선 해마다 급등하는 인건비 부담을 덜기 위해 정규직 근로자 수는 줄이고 비정규직 중심으로 늘릴 수밖에 없게 돼 결국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 노조 눈치 살피는 은행들

은행들도 내심으로는 정부 정책을 반기고 있다. 문제는 은행 노조다. 지난해 금융권은 금융노조와의 산별교섭에서 처음으로 성과연봉제로의 개편을 제안했지만 노조의 반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시중은행 노조 간부는 “한국노총과 금융노조 차원에서 연봉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고 연봉제 도입은 곧 저성과자 퇴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인사 부행장은 “임금체계가 바뀌어야 하는 건 맞지만 노조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진할 수 없고 정부 가이드라인이 나온 뒤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사실상 연내 도입은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임금체계 개편은 노사 합의를 전제하는 만큼 일단 공기업에 우선 적용한 뒤 민간이 뒤따라오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공기업이 바뀐 걸 보게 되면 민간 은행 노조도 바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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