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쓰는 게 자연스러워요”…아침 독서로 폐교 위기 벗은 내촌중

■시골 학교의 반란 시즌2 ⑧경기 포천 내촌중
전교생 아침 1교시 시작 전 30~40분 독서 활동
독후감이 습관으로…문해력 논란, 딴 학교 얘기
교사·학생 멘토링 결연…최소 주 1회 이상 상담
초등학교와 연계 교육과정으로 학생 40% 증가
  • 등록 2024-12-02 오후 4:38:04

    수정 2024-12-02 오후 7:16:03

대한민국 지방 마을들이 인구 감소에 따른 소멸 위기에 처했습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 인구 감소 시·군·구 89곳 중 85곳이 이에 해당됩니다. 소멸의 위기 속에 학교마저 사라지면 새로운 인구 유입 가능성은 아예 차단됩니다. 이데일리는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교육의 질을 제고해 학교를 살리고 있는 현장을 총 8회에 걸쳐 취재 보도합니다. <편집자주>

[포천(경기)=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요즘 교사·학부모들의 고민 중 하나는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지난 9월 한글날을 앞두고 전국 초·중·고 교사 5848명을 대상으로 학생 문해력 실태 조사를 진행한 결과 ‘과거보다 학생들의 문해력이 저하됐다’는 응답이 91.8%에 달했다.
지난 10월 내촌중 학생들이 음악 특기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내촌중 제공)
지난달 경기도 포천 내촌중에서 만난 2학년 승민(가명)이는 문해력 논란은 다른 학교 이야기라고 했다. 승민이는 “아침 독서 활동을 꾸준히 하다 보니 독서량이 늘었고 어휘력이 향상됐다”고 말했다.

포천 내촌중은 2020년 전교생 수가 23명밖에 되지 않아 폐교 위기를 겪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포천시에 속했지만 인근 남양주시로 빠져나가는 학생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촌중 관계자는 “사교육 인프라도 남양주시가 더 발달해 있으니 어차피 그쪽 고교로 진학할 바에는 중학교부터 아예 남양주의 학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당시 교장·교감·교사들은 고민 끝에 인근 내촌초등학교와의 공동 교육과정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을 초청, 함께 교육활동에 참여토록 한 것. 공동 교육과정의 이름은 ‘비단 너울’로 정했다. 내촌면 소재 주금산이 예로부터 산세가 아름답다고 해서 ‘비단산’으로 불렸는데 이를 딴 교육과정 이름이다. ‘너울’은 아이들이 바다처럼 넓은 물에서 크게 퍼져나가는 물결이 되길 바라는 의미에서 붙였다.

초등학교 연계 교육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2020년 23명이었던 학생 수가 이듬해인 2021년 32명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내촌중은 꾸준히 30명 이상의 전교생 수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21년에는 교육부 ‘농어촌 참 좋은 학교’로도 선정됐다. 내촌중의 올해 전체 학생 수는 33명이다.

비단 너울 교육과정도 꾸준히 운영 중이다. 지난 9월에는 내촌 초·중 연계 문화예술 전시회를, 지난 10월에는 내촌문화예술발표회와 음악회, 과학캠프 등을 진행했다. 2학년 지아(가명)는 “초등학생 때 내촌중 초청행사에 참여했다”며 “내촌중에 들어설 때부터 학교가 아름답다고 느꼈고 졸업 후 이곳으로 진학하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했다. 1학년 서준이도 “초등학교 때 내촌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선배들의 공연도 재밌었고 우리도 무대에 올라 공연했는데 지금까지도 추억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지난 10월 내촌중 학생들이 아침 독서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내촌중 제공)
전교생 아침 독서 활동 참여

입학 후에는 자연스럽게 도서관·책과 가까이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도 내촌중의 특징이다. 내촌중 학생들은 8시 30분부터 시작하는 아침 독서 활동에 모두 참여해야 한다. 9시 10분부터 시작하는 1교시 전, 30~40분간 독서로 하루를 열도록 한 것이다. 독서 활동 뒤에는 독서기록장에 짧게나마 독후감을 쓰게 하고 있다.

서준이는 “아침 독서로 독후감을 꾸준히 쓰다 보니 요즘에는 책 한 권을 읽더라도 느낀 점을 써보는 것이 습관이 됐다”며 “이제는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고 했다. 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성 모씨는 “아이가 1학년 때부터 아침 독서에 참여해야 한다며 스스로 일어나 준비하고 등교했다”며 “독서 활동을 한 뒤 아이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것이 가장 만족스럽다”고 했다.

학교폭력(학폭)이 없다는 점도 내촌중의 장점이다. 유재준 교감은 “내촌중에선 근 10년 이내에 학폭 사안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교사와 학생 간 상담이 최소 주 1회 이상이 꾸준히 이뤄진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내촌중의 교사 수는 총 14명(교장·교감 제외)으로 교사당 학생 수가 2명을 조금 넘는다. 교사들은 이런 ‘작은 학교’의 장점을 살려 주 1회 이상은 모든 학생과 1대 1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유 교감은 “문제 학생이 발생하거나 학생 간 갈등이 생겼을 땐 교장·교감까지 나서 주 5회까지도 상담을 이어간다”고 했다. 학생 간 갈등이 학폭으로 악화되기 전 상담으로 이를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월 내촌중 학생들이 미술 특기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내촌중 제공)
입학 후 교사가 ‘멘토’ 역할

학생들이 입학하면 1학년 때부터 교사와 학생을 멘토·멘티 관계로 묶어주는 것도 내촌중의 장점이다. 교사 1인당 약 2명의 학생에게 멘토가 돼 주는 것이다. 사실상 3명씩 묶인 소그룹인 멘토·멘티 관계에선 기초학력 문제나 학교생활 고민 등이 모두 상담 주제가 된다. 손지연 연구부장은 “학년이 올라가면 멘토(담당 교사)가 바뀌긴 하지만 학생 교사 간 멘토·멘티 관계는 꾸준히 유지된다”며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이나 과학고 진학을 노리는 우수 학생이나 모두 멘토에게 밀착·개별 지도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내촌중 학생들은 방과 후 교육을 모두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강좌당 수강료는 약 5만원이지만 시골학교 학부모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는 액수다. 더욱이 학교 주변에 학원이 적다 보니 학부모들은 내촌중 방과 후 프로그램에 만족하고 있다. 손지연 부장은 “방과 후 프로그램에서는 독서·논술·음악·체육·영어회화를 비롯해 국어·수학·과학 교과 보충 수업을 받을 수 있다”며 “교육청 지원으로 모두 무료로 개설한 것도 학부모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고 했다.

내촌중은 내년부터 ‘주말학교’ 개설을 계획하고 있다. 교사들이 주말에도 학교에 나와 기초학력 미달 학생 등을 지도하기로 한 것이다. 유 교감은 “평일에는 방과 후 교육이나 동아리·스포츠 활동을 많이 하기에 학습결손이 생기지 않도록 기초학력 부족 학생이나 희망 학생을 대상으로 주말학교를 열 것”이라고 했다.

지난 9월 내촌중 학생들이 내촌문화예술 전시회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내촌중 제공)
소규모 학교의 경우 교육청에 따라 광역학구제를 운영 중인 곳도 있다. 예컨대 경남교육청은 광역학구제를 통해 학생들이 주소지 이전을 하지 않고도 인근 다른 학구 내 소규모 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했다. 내촌중도 관할 교육청에 광역학구제 시행을 건의 중이다. 내촌중 관계자는 “지난 여름에는 가평 거주 학부모 6명이 찾아와 내촌중 진학이 가능한지 문의했지만 주소지 이전이 아니면 입학이 어렵다고 말씀드렸다”며 “우리 학교에 대한 소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온 분들인데 그분들의 자녀를 입학생으로 받을 수 없는 점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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