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강화했지만 실형 줄어"…'n번방 방지법' 1년, 한계 여전

지난해 12월 'n번방 방지법' 시행됐지만
신법 적용 판결, 징역형 줄고 집행유예↑
"처벌 강화 구현 안돼…제대로 적용해야"
"플랫폼 옮기면서 발생…피해 장기화 특징"
  • 등록 2021-12-08 오후 5:10:43

    수정 2021-12-08 오후 5:15:34

[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해외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를 저질러 사회적 공분을 산 ‘n번방 사건’으로 지난해 12월 10일 ‘n번방 방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당초 n번방 방지법 처벌을 강화해 디지털 성범죄를 예방하는 취지로 개정됐지만 오히려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이전보다 줄면서 제대로 작용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9월 15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과천 법무부에서 N번방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그 후 1년을 주제로 열린 디지털성범죄 사례 발표 화상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시민단체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와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온라인 토론회에서 n번방 방지법이 제정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실효성 있게 작동하는지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n번방 사건은 텔레그램으로 단체 채팅방을 운영하며 아동·청소년의 성착취물과 성인 출연 음란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사건이다. n번방의 운영진이었던 조주빈(26·구속)과 채팅방을 개설한 문형욱(24·구속) 등 주요 운영진들이 경찰에 붙잡히면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다.

이 사건으로 통과된 n번방 방지법은 성폭력처벌법·정보통신망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등 6개 법안을 포괄한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관련 처벌 형량에서 벌금형을 삭제하는 등 처벌을 대폭 강화한 것이 핵심이다. 불법 촬영물을 소지하거나 시청만 해도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개정안 시행 이후 이를 적용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구법을 적용했을 때보다 형량이 더 가벼운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성착취대응팀이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성폭력처벌법 위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개정안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229건으로 69.6%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구법을 적용해 징역형을 선고한 판결은 214건으로 74%를 차지해 오히려 실형 선고가 더 많았다.

반면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비율은 신법 적용 사건이 79.4%로 구법 적용 사건보다 3.2%포인트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내에 선고받더라도 범죄 발생 시기에 따라 법을 적용하기 때문에 개정안 시행 이전에 범죄를 저지른 경우 구법이 적용된다.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처벌을 강화한 법 제도가 제대로 작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단비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대표는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가 회복되다가도 몇 년이 지난 이후에 또다시 유포돼서 또다시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며 “플랫폼을 옮기면서 발생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변화가 없다면 ‘제2, 제3의 n번방’이 나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은호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변호사는 “징역형이 아닌 집행유예나 벌금형은 처벌의 무게가 낮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며 “개정 이후 법정형은 대폭 상향됐지만 실제 선고형은 크게 증가하지 않아 디지털 성폭력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법률 개정 취지가 잘 구현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올해 n번방 사건의 주범인 조주빈은 징역 42년, 문형욱은 징역 34년형을 선고받았다”며 “해당 판결이 이례적인 판례에 그치지 않고 디지털 성폭력 사건의 새로운 기준이 되길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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