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카드 꺼낸 엘리엇, 장기전 태세 갖춘 듯

  • 등록 2015-06-09 오후 5:46:59

    수정 2015-06-09 오후 7:29:10

그래픽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박수익 박기주 기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저지를 위한 주주총회결의금지 가처분 소송 카드를 꺼내든 것은 향후 삼성 지배구조 고리를 노린 장기전 태세를 갖추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엘리엇이 이날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한 주주총회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은 내달 17일 임시주총에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안건 결의를 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엘리엇은 또 “이러한 법적절차는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 기관·소액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주장에 동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법조계 등의 전문가들은 이번 소송전은 일단 엘리엇이 단기 차익을 노리기보다는 장기전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엘리엇 입장에서는 가처분이 인용되면 합병저지라는 1차목표를 달성하는 것이고, 기각될 경우에도 지분매입과 주주제안, 주주대상 서한 발송에 이어 순차적인 ‘명분’을 쌓으면서 향후에도 문제제기에 지속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인수합병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으로서는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법적카드를 꺼내든 것이고 설령 기각되더라도 주총 표대결과 주총 이후 효력정지 가처분 등 추가 법적조치를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도 “엘리엇이 국내법 절차를 충분히 숙지한 상태에서 준비된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보인다”며 “그간 일부의 예측과 달리 단기 시세차익보다는 국내법이 보장하는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면서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며 지분가치 극대화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엘리엇이 과거 삼성물산을 공격한 헤르메스와 달리 ‘경영참여’를 선언한 상태에서 주가상승기에 갑작스런 대규모 매도에 나선다면 허위공시와 주가조작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점도 단기차익실현 가능성을 낮게 보는 배경이다.

다만 통상 기업 경영권 분쟁과 관련 사건은 동일한 재판부가 계속해서 담당한다는 점에서 첫 소송전인 주총결의금지 가처분 인용 여부가 향후 전개될 수 있는 법적 다툼에서도 연관성을 지닌다는 점이 관건이다.

삼성그룹 측은 엘리엇의 연이은 공세에 기관투자자 설득에 나서는 한편 엘리엇의 가처분 소송에 대해서도 대규모 법무팀 검토를 거쳐 맞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향방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국민연금은 이날 2차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었지만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건에 대해 어떤 입장도 정리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주식시장에서 삼성물산 주가는 장 초반 엘리엇 측의 소송 제기 소식이 전해지면서 잠시 반등하기도 했지만, 결국 전날보다 3.55% 하락 마감했다.

이날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관련 임시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기 위해 주식을 취득해야 하는 시한이었던 탓에 투자자별 매매동향도 관심을 모았다. 거래량은 엘리엇의 경영참여 소식이 전해진 이후 가장 낮은 699만주 수준이었고, 외국인과 연기금 모두 순매수를 기록했다. 외국인은 삼성물산 주식을 327억원어치가량 순매수했고, 연기금도 엘리엇의 등장 이후 4거래일 연속 순매수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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