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은 1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중공업이 엔지니어링을 흡수합병하는 안건을 결의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삼성SDI에 합병된 제일모직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됐다. 제일모직은 그룹의 모태 중 하나라는 상징성 때문에 에버랜드의 새로운 사명으로 쓰이는 영광을 얻었지만 삼성엔지니어링은 간판마저 땅에 묻히게 된다.
삼성엔지니어링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국내 엔지니어링산업 육성 차원에서 내린 대통령 지시각서에 따라 1970년 설립된 국내 1호 엔지니어링 회사다. 미국 자본과의 합작으로 코리아엔지니어링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뒤 1978년 당시 중화학 분야에 집중하던 삼성그룹에 인수됐다. 1991년부터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다.
현재 최대주주는 삼성SDI로 삼성그룹 편입 당시 제일모직과 삼성전관이 주축이 된 탓이 크다. 제일모직은 삼성SDI에 합병됐고, 삼성전관은 삼성SDI의 전신이다. 주식시장에는 1996년 12월 상장했는데 신도리코와 퍼시스, SK하이닉스(당시 현대전자산업)가 상장 동기다.
이 때 역시 대박주였으나 건설주라는 꼬리표만 달고 있으면 너나없이 오르던 때라 그다지 놀라울 것은 없었다. 삼성엔지니어링이 진정한 대박주 평가를 받은 것은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 폭락하던 주가가 바닥을 찍고 급상승하던 2008년 말 이후였다.
2008년 11월 2만6800원까지 내려갔던 주가가 2011년 7월 28만1000원까지 수직상승했다. 여타 건설주 역시 이 시기 상승하기는 했으나 어느 누구도 2007년 말 고점을 넘지 못했다는 점에서 삼성엔지니어링은 군계일학이라 할 만했다.
삼성엔지는 당시 전세계적인 경기 부양 시류 속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수주 소식을 전해 왔다. 2009년 해외 수주 실적 1위의 기염을 토할 정도였다. 2003년 삼성엔지니어링에 부임했고, 지난해 말 인사에서 고문으로 물러난 정연주 전 부회장은 그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말 인사에서 삼성물산 대표이사 및 건설부문장으로 영전하기도 했다. 정연주 효과는 삼성물산에도 전해져 삼성물산 주가도 비슷한 시기인 2011년 7월 역사상 고점을 찍었다.
이번 두 회사간 합병 관련, 두 가지 측면의 접근이 존재하고 있다. 하나는 가장 큰 관심사인 삼성그룹내 지배구조 개편이고, 또다른 하나는 다운사이징 차원의 계열사 정리다. 삼성엔지니어링 회사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부실 정리에 가까워 보인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엔지니어링은 이번 합병에 따라 취약한 자본 확충이 이점을 누릴 수 있으나 단기에 빠른 이익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삼성중공업 역시 추가 충당금 위험이 있는 등 두 회사 모두 이익 정상화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측면에서 소폭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