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헤어진 연인을 5개월간 스토킹하다 끝내 살해한 김병찬(35)이 지난달 구속 송치됐다. 지난 7월에는 서울 마포구 오피스텔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연인 관계를 알렸다는 이유로 말다툼을 벌이던 30대 남성이 연인을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도 있었다. 김병찬이 살인에 이르기 전 지속적인 스토킹을 한 과정 등을 두고 ‘데이트폭력’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지만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다.
| 스토킹으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김병찬이 지난달 29일 오전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서울 남대문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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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과거 자신의 조카가 전 연인과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을 ‘데이트폭력’이라고 언급해 논란을 빚었다. 이 후보는 “제 일가 중 일인이 과거 데이트폭력 중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하며 살인 사건에 ‘낭만적인’ 단어를 가져다 썼다는 비판을 받았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 범죄를 지칭하는 용어가 딱히 없었을 당시 생겨난 데이트폭력이라는 용어가 범죄의 심각성을 희석시키고 있다는 느낌이다. ‘데이트’라는 말의 어감이 아무래도 낭만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교제폭력’이 더 적절해 보인다. 실제 시민사회계에서는 데이트폭력 대체 용어로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Violence in intimate relationship)’, ‘파트너 폭력(Intimate partner violence)’ 등 다양한 단어가 거론되고 있다.
무엇보다 데이트폭력은 연인 사이에서 행해지는 언어·정서적 폭력이나 집착 등도 포괄하고 있어 세분화된 개념으로 재정립할 필요도 있다. 현재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건들은 이미 교제가 끝난 사이에서, 더군다나 살인으로까지 이어진 것이기 때문에 데이트라는 말과는 직접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나영이(가명) 사건’을 ‘조두순 사건’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지적처럼,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용어라도 어떻게 지칭하느냐에 따라 사건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가해자 중심에서 벗어나 사태의 심각성을 포괄하면서도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묘사할 수 있는 적절한 용어 사용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