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쏟아지는데…거리 곳곳엔 위험 방치, 전기시설 무방비

도로전기시설 감전 사상자 매년 5명씩 발생
반지하 침수 반복되지만 차수막 안 보여
"전류차단기 보급하고 시설 점검 강화해야"
  • 등록 2024-07-02 오후 3:48:36

    수정 2024-07-07 오후 2:46:14

[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김세연 수습기자]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발목까지 빗물이 찼어요. 이 일대 전기가 나가서 길을 걸으면서도 무서웠어요.”

2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임모(30)씨는 재작년 여름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2년 전 그날 오후 8시쯤 전기설비가 갑자기 쏟아진 비에 이상이 생겨 정전이 된 것이다. 임씨는 “너무 당황해서 감전을 생각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신고 있던 슬리퍼가 계속 벗겨졌다”며 “길에 차오른 빗물에 발을 담그고 있어도 괜찮을까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올해 본격적인 장맛비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안전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 전기시설이 곳곳에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혹시 모를 사고를 막기 위해 침수를 미연에 방지해야 하지만 반지하 시설이나 상습 침수 구역에서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전문가들은 장마가 본격화되기 전 도로 위 전기·배수 시설을 점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울 강남구 골목길의 한 전신주에 전선이 뒤엉켜 있다.(사진=김세연 수습기자)
‘위험등급’ 도로전기시설, 2만여개…폭우에 감전 위험 곳곳에

이데일리가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한국전기안전공사에서 제출받은 ‘도로전기설비 점검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 위험 등급을 받은 도로전기시설 2만여개가 미보수 상태로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사는 전기안전관리법에 따라 도로전기설비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데 이 검사에서 E(위험)등급은 안전 위험이 있어 즉시 개보수가 필요한 설비하는 뜻이다. 설비별로 보면 △가로등 1만 6416개 △신호등 2384개 △보안등3661개 △폐쇄회로(CC)TV 등 특수전기시설 253개 △이동통신중계기 등 통신 전기시설 168개가 E등급을 받았다.

이처럼 도로에 방치된 위험 전기설비는 폭우가 내릴 경우 최악의 상황으로 번질 수 있다. 지난 2022년 폭우로 쓰러진 가로수 정리 작업을 하던 60대 구청 직원이 감전으로 쓰러져 사망하기도 하는 등 많은 비가 내릴 때면 감전 사고도 잇따르기 때문이다.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전기재해통계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매년 평균 5.2명이 통신주 및 가로등에 의한 감전으로 숨지거나 다쳤다. 여기에 다른 전기시설에 의한 감전까지 포함하면 피해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한국전기안전공사 관계자는 “개선명령권이 지자체에 있는데, 예산이 부족한 곳은 설비를 교체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감전사고를 막기 위해 지난해부터 가로등과 신호등에 원격점검장치를 설치하고 위험신호가 확인되면 지자체에 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들 “감전 사고나면 어쩌죠”…침수 대책도 여전히 미비

시민들 역시 감전 사고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직장인 남모씨는 “2년 전 침수 때는 재택근무를 했는데 올해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전선이 내려와서 감전되면 어떡하느냐는 말을 회사 사람들과 많이 했다”고 했다. 영등포구에 사는 이병덕(75)씨는 “작년에 초등학교 앞에 있는 변압기에서 불이 번쩍하고 났다”며 “다행히 사람은 안 다쳤는데 길 가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싶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감전 피해를 키우는 침수 위험마저 크다는 점이다. 이날 영등포구 도림천 인근 주택가에서 만난 신모(37)씨는 “반지하도 많고 침수 많은 거 뻔히 알려진 곳인데 구청이나 주민센터는 나중에 일이 터져야 온다”고 비판했다. 신씨는 “작년에도 길에 발목까지 물이 찼는데 물막이판이 설치된 집은 몇 곳 뿐”이라며 “거동이 힘든 노인도 많은데 오늘 자다가 물이 차면 어쩌려고 하느냐”고 되물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홍모(76)씨는 “올해 비가 많이 온다고 하는데 침수든 감전이든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지난달 서울시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내 반지하 등 침수 우려 가구의 차수판 설치율은 61%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구 20%, 동작구 49% 등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도로 침수와 감전을 하나의 문제로 보고 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보행자는 몸에 찌릿한 느낌을 받으면 그 길로 진입하지 말아야 하고 가로등이나 신호등 주위를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개개인은 장화 등으로 감전사고에 대비할 수 있고 지자체는 노후 전기시설의 점검과 교체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한편 기상청은 이날부터 오는 3일 오전까지 전국 대부분 지역에 돌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고 예보했다. 이틀간 수도권을 포함한 대부분 지역에는 30~80㎜가량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경기와 강원·충북 일부 지역에는 100~120㎜ 이상 빗방울이 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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