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윤정훈 기자] “제 나이가 올해 82살이에요. 죽어서 아버지 만나면 ‘유골은 한국땅에 모셔놓고 왔습니다’하고 말해야 할거 아니예요.”
| 우키시마호(다큐멘터리 영화 ‘우키시마호’의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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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룡 우키시마호 피해자 유족회장은 6일 이데일리와 통화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1970년대부터 우키시마 관련 일(진상규명)을 조사했다”며 “조사한지 60년만에 드디어 명부를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우키시마호사건 피해자 배상추진위원회 유족 대표인 한 씨는 나이 3살에 아버지 한석희씨가 징용영장을 받아 일본으로 간 후에 우키시마호에서 사망했다. 이는 함께 우키시마호에 승선해 돌아온 생존자의 증언으로 확인했다.
한 씨는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우키시마호가 침몰한 마이즈루 인근 해역을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 씨는 “2012년 5월에 스쿠버다이버를 데리고 교토 마이즈루 침몰지에 가서 3m 뻘에 쌓여있는 유품, 유골을 확인했다”며 “사망자의 유품이나 유골이 있는곳을 아는데 이를 인양하지 않고 제대로 된 조사가 될 수 없다”고 명부가 공개됐으니 조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도쿄 우천사(祐天寺·유텐지)에 275위의 유골이 있다”며 “DNA 검사를 했는데 아버지와 유골하고는 일치하는게 없었다. 침몰지 조사를 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우키시마호 피해자 유가족들은 우리 정부가 그동안 명부가 있는데도 감춰온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묻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보상 소송을 대리해온 최봉태 변호사는 “우리 정부가 이번에 입수한 명부를 기초로 어떤 노력을 할지 지켜볼 것”이라며 “최소한 피해자단체에 신속히 명부를 제공하고 정부안에 전문가로 구성된 대응팀을 제대로 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는 “국회에 우키시마호 폭침 진상규명을 위한 촉구 결의안이 제출돼 있다”며 “조속한 통과를 위해 한국 국회에 명부를 공개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오태규 전 오사카 총영사가 2020년 일본 교토부 마이즈루시 소재 순난비 공원에서 열린 우키시마마루 순난자 추도식 행사에 참석한 모습(사진=외교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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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지난 5일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를 입수하기 위해 일본 정부와 교섭을 거친 결과 일본측으로부터 승선자 명부 일부를 제공 받았다고 밝혔다. 일측이 제공한 자료는 총 75건의 자료 중 내부조사를 마친 자료 19건이며, 여타 자료에 대해서도 내부조사가 완료되는 대로 제공할 예정이다.
우키시마호는 광복 직후인 1945년 한국인 강제징용자와 그 가족을 태우고 부산으로 향하려던 일본의 해군 수송선이다. 1945년 8월 22일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을 출발해 이틀 뒤인 24일 교토 마이즈루항에 기항하려다 선체 밑부분에서 폭발이 일어나 침몰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우키시마호가 해저 기뢰를 건드려 폭침했고 승선자 3700여명 중 524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유족들은 일본이 고의로 배를 폭파했고 승선자 7500~8000명중 3000명 이상이 숨졌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