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대법원은 담배회사의 제조, 설계상의 결함이나 고의·과실, 불법행위 등에 대해선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담배회사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담배회사의 흡연 폐해 인지 여부와 제조상의 문제 등에 대한 입증이 향후 진행될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담배소송에서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공단은 11일 외부대리인 선임 절차를 마무리하고, 오는 14일 공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537억원 규모의 담배소송(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진료비환수청구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대법원 “담배회사 흡연자에 손배 책임 없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이날 김모씨 등 30명이 KT&G(033780)(옛 담배인삼공사)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 2건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담배소송과 관련해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999년 소송이 제기된 지 15년 만의 확정 판결이다.
재판부는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의 개별적 인과관계, 제조물책임법상 담배의 결함 존재 여부, 담배 회사의 불법행위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심리한 결과 피고 측에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다만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의 개별적 인과 관계에 대해선 폐암의 종류별로 판단을 달리했다. 폐암 중 소세포암과 편평세포암은 흡연과의 관련성이 매우 크다고 밝혔지만, 선암·세기관지 폐포세포암은 흡연으로 인해 유발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법원과 고등법원 판결을 종합하면 법원은 흡연으로 인한 암으로 폐암 중 소세포암·편평세포암과 후두암 중 편평세포암 등을 모두 인정한 것이다. 이는 건보공단이 제기할 예정인 담배소송 대상 암 3종과 동일하다.
건보공단은 담배회사를 상대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폐암 중 소세포암·편평세포암, 후두암 중 편평세포암을 진단받은 환자 가운데 흡연력이 20갑년 이상이고, 흡연기간도 30년 이상이라고 응답한 3484명에게 지급한 공단 진료비 537억원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건보공단, 담배 첨가물 유해성·위법성 입증 ‘자신’
대법원이 15년만에 처음으로 흡연과 일부 암과의 연관성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것은 담배회사에 제조·표시·안전상 결함이나 고의적 불법행위에 대해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이 같은 항목의 증거가 인정될 경우 담배회사는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안선영 건보공단 변호사는 “개인들은 담배 제조와 설계상 결함 등을 입증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어렵다”며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인적자원을 갖춘 조직이 소송해야만 승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법원은 담배회사들이 니코틴 중독성을 높이기 위해 유해한 첨가제를 넣었다는 주장에 대해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건보공단은 해외 사례 등을 통해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안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담배회사들이 중독성을 높이기 위해 수많은 첨가물을 넣었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만약 (담배회사가) 첨가물을 조작해 담배의 위해성을 높였다는 점을 입증하면 판결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건보공단은 담배회사들의 불법행위 등에 대해선 내부 고발자 등을 확보해 증거를 모으는 한편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해 국내외 교수와 의사들의 도움을 받아 소송에 대응할 방침이다. 다만 대법원이 흡연은 자유 의지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고 판시했고, 15년만에 처음으로 담배회사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며 면죄부를 준 점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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