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노무현정신 외치며 봉하행…중도확장·내부결속 '동상이몽'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
與지도부 5·18 기념식 닷새 만에 참석
이재명 "민주주의 퇴행"…당내선 자성
  • 등록 2023-05-23 오후 5:31:17

    수정 2023-05-23 오후 7:31:40

[이데일리 이유림, 김해=이수빈 기자] 여야 지도부는 23일 노무현 정신을 외치며 앞다퉈 봉하마을로 집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경남 거제시의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해 보수 정당의 뿌리를 먼저 확인한 뒤, 노 전 대통령 추도식으로 향하며 통합 행보를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은 당내 어수선한 분위기를 수습하고 지지층 결집을 꾀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달라진 與, 진보진영 행사 참석

노 전 대통령 추도식은 이날 경남 김해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 인근 생태문화공원에서 엄수됐다. 봉하마을로 향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추도식 한참 전인 아침 일찍부터 이어졌다. 노란색 바람개비를 들고 있었고, 노 전 대통령이 즐겨 쓰던 밀짚모자를 한 참배객도 눈에 띄었다.

이번 추도식에는 주최측 추산 7000여명이 참석했다. 여권에서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근조화환을 보내 애도의 뜻을 전했다. 야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박광온 원내대표, 이해찬 전 대표가 참석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정숙 여사와 함께 퇴임 이후 2년 연속 참석했다.

김기현 대표는 추도식 참석에 앞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생가를 찾았다. 그는 대통령 기록관을 둘러보며 김 전 대통령의 학창시절부터 대통령 당선, 정상외교 활동 등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김 전 대통령의 23일간 단식투쟁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역사에 없던 진짜 단식이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체제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하나회 척결 등에 대해서도 “혁명적 개혁”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하는 의미에 대해 “대한민국 정치 선진화를 위해서는 더 이상 전직 대통령에 대한 흑역사가 반복돼선 안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며 “그런 면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생각과 철학이 다르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예우하고 존중의 뜻을 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과거 보수 정부 때만 하더라도 노 전 대통령 추도식은 야권 친노 인사들의 행사로 여겨졌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국민의힘은 노 전 대통령 추도식뿐 아니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세월호 참사 기억식 등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이제야 당이 제대로 가는 느낌”이라며 “예년이면 시민들로부터 물벼락을 맞았을 텐데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5·18 정신’, ‘노무현 정신’이 특정 정치 집단의 전유물로 여겨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광온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들이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위기의 이재명, 권양숙 여사 만나

이재명 대표는 추도식 참석에 앞서 권양숙 여사와 1시간 동안 오찬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권 여사는 이 대표에게 독도가 그려진 ‘무궁화 접시’ 도자기와 책 ‘일본 군부의 독도 침탈사’, ‘진보의 미래’ 두 권을 선물했다. 독도 영토주권과 진보진영의 역할 성찰의 의미가 담긴 이번 선물에 대해 이 대표는 “의미를 잘 새기겠다”고 화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추도식 참석 직후 취재진과 만나 “민주주의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지만 아무나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끊임없이 노력해야 민주주의 발전, 역사의 진보가 가능하다”며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이 훨씬 큰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는 최근 검찰의 민주당 인사들을 향한 수사가 ‘정치적 기획’에 따른 것이라고 반발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이 꿈꾸셨던 ‘사람 사는 세상’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향해서 깨어있는 시민들과 함께 조직된 힘으로 뚜벅뚜벅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동시에 최근 ‘전당대회 돈봉투’ ‘김남국 의원 코인 의혹’이 불거진 민주당의 상황을 돌이키며 자성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같은날 SNS에서 “민주당은 노무현의 유산을 잃어가고 있다”며 “높은 도덕성은 민주당의 정체성이다. 도덕성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 엄격한 잣대로 자기 개혁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신을 희생해 모두를 살린 노 전 대통령 앞에서 우리는 과연 떳떳할 수 있는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고 쓴소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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