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오토in] 카가이 유호빈 기자= 지난 3월 국산차 판매량을 보면 소형 SUV의 선전이 돋보인다. 반면 해치백은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했다. 자동차 업체 입장에서 보면 차라리 해치백은 팔지 않는 것이 더 나을 듯한 실정이다. 해치백이 세단의 파생 모델이라고 해도 개발비는 수 백억원이 들어간다.
우리나라는 여태까지 해치백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인구밀도가 조밀한 대도심 중심이라 유럽처럼 해치백 인기가 꽤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런 기대가 깨진 게 이미 1990년대부터다.
대표적으로 현대차는 i30에 핫해치라는 닉네임을 붙이며 2016년 야심차게 출시했지만 지난 3월 판매량은 205대다. 2010년에 출시해 아직까지 팔고 있는 르노삼성의 사골 모델인 SM5가 221대를 판매한보다 못한 수치다. 벨로스터는 상황이 더 나쁘다. 현대차 최초로 고성능 N모델을 출시해 출시 초반 반짝 관심을 끌었지만 수동변속기 옵션만 달린 것과 3000만원에 육박하는 가격대 등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201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200대를 넘어선 것이 호실적이라는 상대적으로 후한 평가가 나올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대차도 해치백은 유럽 전용으로 개발하고 국내는 구색을 갖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해치백이 국내에서 판매량이 저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큰 차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특성 문이다. i30나 벨로스터 두 차량은 소형차 이지만 후륜서스펜션에 멀티링크를 적용하며 코너링과 승차감을 극대화다. i30는 1.6 N라인을, 벨로스터는 N모델까지 내놓으면서 며 크기는 작지만 잘 달리는 차량, 즉 펀카라는 이미지를 강조했다. 국내 소비자는 이렇게 받아 들인다. “작은 차를 높은 가격에 내놓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이다.
르노삼성은 유럽에서 상종가 인기를 끄는 해치백 클리오를 작년 5월 출시했다. 한국 최초로 르노 뱃지를 단 모델이다. 몇 년간 한국 시장의 간을 보며 출시 시기가 늦어진 클리오는 90마력에 그친 1.5 디젤 엔진과 이미 신차가 나온 '끝물 재고처리'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판매는 부진하다. 올해 3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신형 클리오가 벌써 발표돼 팔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지난달 판매량은 140대에 그쳤다. 자동차보다 오토바이에 가까운 전기차 트위지보다 판매량이 적다.
그런데 크기가 해치백과 크게 다르지 않고 가격대는 비슷한 국산 소형 SUV는 연일 승승장구 중이다. 현대 코나의 3월 판매량은 2월에 비해 2배 이상 상승한 4529대에 달했다. 쌍용차를 먹여살리는 '소녀 가장' 티볼리는 3360대를 판매했다. 국내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는 쉐보레이지만 쉐보레 소형 SUV 트랙스는1043대를 판매해 상위권을 차지했다. 전체적으로 SUV 시장이 커지는 있는 추세인데다 사회 초년생들이 부담 없는 첫 차로 소형 SUV를 구입하고 있다. 못(?)생겨진 아반떼 페이스리프트도 그럭저럭 판매가 되는 게 이런 이유다.
차급이나 실내공간 등을 따져보면 해치백과 소형 SUV의 차이는 크지 않다. 수입차의 경우 신형 렉서스 UX와 볼보 XC40도 크기는 비슷하다. 코나와 i30의 제원 수치를 비교해보면 전고를 제외하면 오히려 i30가 더 큰 편이다. i30가 길이는 17.5cm, 휠베이스는 5cm 더 크다. 코나가 전폭과 전고는 더 크지만 전폭은 5mm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높이는 9.5cm 정도 높다. 전고가 높아 헤드룸이 넉넉하고 전방 시야가 좋다는 점이 소형 SUV 인기의 이유일 수 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해치백은 한국에서 무덤으로 지내야할까. 최소한의 성공을 위해서는 가격 경쟁력이 우선이다. 해치백을 작고 잘 달리는 펀카뿐 아니라 사회 초년생들이 부담스럽지 않는 가격대에 구입이 가능하다면 우리나라에서도 해치백은 무덤이 아닌 성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르노 클리오는 가솔린 터보 등 다양한 엔진 라인업을 보강하고 하루 빨리 신 모델을 들여온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는 길게 보면 늘 정직한 소비패턴을 보여왔다. 가성비를 갖추고 해치백 선택의 폭이 늘어난다면 소비자의 장바구니에 해치백이 담길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다양한 해치백 라인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