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재승인 때 ‘점수 조작’ 됐나?…방통위는 ‘점수 평가’에 관여 안 해

2020년 4월, TV조선 공정성 항목 과락으로 조건부 재승인 받아
TV조선, 감사원발로 ‘점수 조작’ 의혹 보도
방통위원이나 사무처가 점수 매기는 구조 아냐
방통위 “외부 전문가 독립적 심사” 입장 밝혀
2020년 논점은 재승인 거부냐, 재승인이냐 였는데
  • 등록 2022-09-08 오후 6:56:55

    수정 2022-09-08 오후 10:28:06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어제(7일)와 오늘(8일), TV조선과 조선일보가 2020년 4월 방송통신위원회가 TV조선 재승인 심사를 할 때 ‘일부 심사위원이 점수를 조작한’ 정황이 있다고 보도하자 시끄럽습니다.

TV 조선, 감사원발로 ‘점수 조작’ 의혹 보도

감사원이 방통위 감사에서 이 같은 정황을 확인했고, 범죄 개연성이 있다는 취지의 감사 결과를 검찰에 이첩했다고 보도했죠. 점수가 조작된 항목은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 항목 점수라고 했습니다. TV조선은 여기서 과락(50%에 미달)을 받아, 653.39점을 받아 재승인 기준 점수인 1000점 만점에 650점을 넘겼지만, ‘조건부 재승인’이 이뤄졌죠.

TV조선 보도에서도 ‘감사원이 일부 심사위원들이 평가 점수를 제출한 뒤 이후 점수를 낮춘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실무자들로부터 점수를 조작한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여서, 구체적인 근거가 적시돼 있진 않습니다.

점수 조작이 이뤄졌다면, 이는 방통위 스스로 방송법의 근간을 뒤흔든 일입니다. 정말 엄청난 일이죠.

방송법에선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보도채널 등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시 어떤 심사 기준으로 어떤 절차에 따라 심사해야 하는가가 적시돼 있습니다.

방송평가, 시정명령의 횟수와 시정명령에 대한 불이행 사례, 방송의 공적 책임을 고려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법령의 위반 여부, 시청자위원회의 방송프로그램 평가, 지역사회발전에 이바지한 정도, 방송발전을 위한 지원계획의 이행 여부 등이죠.

그리고 점수를 방통위 사무처나 방통위원들이 직접 매기는 게 아닙니다. 학계·법조계 등에서 추천을 받아 분야별 외부전문가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들이 점수표를 만든 뒤, 방통위원 5명이 참석하는 전체회의에 최종 의견을 올리면, 이를 기반으로 여야 추천 상임위원 5명이 토론해서 재승인 여부와 재승인 조건을 결정합니다.

방통위 “외부 전문가 독립적 심사”

방통위는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① 2020년 3월 당시 방송통신위원회는 엄격하고 공정한 종편·보도PP 재승인 심사를 위해 분야별 외부전문가로 심사위원회를 구성·운영했고 ②심사위원들은 외부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심사·평가하고, 방송통신위원회는 심사위원들의 점수평가에 대해 관여하지 않았으며 ③감사원 수감과정에서도 충실히 설명했다고 밝혔습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최시중 초대 위원장 때부터 방통위를 출입해 온 저로서는 방통위 입장은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2011년 종편 출범 이후 2014년, 2017년, 2020년 재승인 심사 때 정권은 달랐지만, 단 한 번도 방통위가 직접 점수를 매기거나 하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사위원 역시 여야 추천 상임위원들이 함께 정하죠.

따라서 만약(믿기 어렵지만) 점수 조작이 있었다면, 그것은 일부 심사위원의 일탈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원에서 2020년 종편 재승인 심사를 진행한 심사위원을 대상으로 조사에 나섰고, 해당 심사위원들에 대해 검찰 고발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2020년 논점은 재승인 거부냐, 재승인이냐 였는데

다만, 점수 조작 여부를 떠나, 2020년 당시 논점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2020년 4월 20일 방통위 전체 회의 속기록을 보면, 심사위원회는 TV조선에 대해 ‘조건부 재승인’이 아니라 ‘재승인 거부’를 건의한 점이 확인되죠. 당시 회의에서 한 명의 상임위원(김창룡 상임위원)은 ‘재승인 거부’를 끝까지 주장했지만, 대다수 상임위원들(허욱·표철수·안형환 상임위원 등)은 방송의 안정성과 2017년 재승인 심사 때보다 승인 조건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 점 등을 이유로 ‘조건부 재허가’를 택한 걸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의 공적 책임을 방기하고 언론이기를 포기한 채널A와 TV조선의 재승인을 취소하라’는 청원글까지 등장한 상황이었습니다. 해당 청원은 답변 기준 인원인 20만 명을 돌파했죠.

하지만 방통위는 ‘조건부 재승인’을 택하면서, “TV조선은 방송의 공적책임 등에서 50%에 미달한 점, 심사위원회와 청문위원회에서 재허가 거부를 건의한 점 등이 고려돼 승인유효 기간이 채널A(4년)보다 1년 짧다”고 밝혔습니다.

오히려 방통위 전체회의에서의 논란은 정부기관이 방송의 공정성을 평가할 수 있는가, 공정성에 미달했다 해서 재승인 유효 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줄이는 게 법적 근거가 있는가 등이 이슈였습니다. 당시 안형환 상임위원이 제기한 이슈였죠. 같은 맥락에서 지난해 박대출 의원이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등 방송사 재승인 때 방송통신위원회가 법적 근거가 없이 부당한 조건을 부과하는 것에 제동을 거는 ‘방송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당시 국민청원 등 재승인 거부 여론이 비등했음에도, 방통위는 ‘조건부 재승인’을 의결한 셈인데, 갑자기 ‘점수 조작’이라는 의혹이 불거진 겁니다.

이번 사태로 일부 심사위원뿐 아니라 방통위 사무처 직원들까지 감사원 감사에 이어 검찰 조사까지 받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으로선 굉장히 번거롭고, 억울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번 기회에 ‘점수 조작’ 의혹을 말끔히 정리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그래야 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 넓게 보면 언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여야 합의제 기구’로 설립된 방통위의 존립 근거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기사 작성 이후 메일함을 열었더니, 2022년 현재 여권 추천인 안형환 부위원장과 김효재 상임위원이 입장문을 냈습니다. 두 분은 ‘조선일보(9.8), TV조선(9.7) 보도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입장 발표에 동의하지 않음을 밝힌다’며 ‘우리는 아직 이 문제에 대한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만큼 위원회 명의의 입장발표는 적절치 않으며 감사원의 감사결과와 만약 검찰 수사로 이어진다면 그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방통위가 이러한 여러 논란을 하루 빨리 정리하고 구성원들이 심적 부담 없이 대한민국의 방송과 통신 발전에 전력을 다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부연했습니다.

방통위에는 다섯 분의 상임위원이 있는데, 장관급인 위원장과 차관급인 상임위원 네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여당 추천 상임위원 두 분이 방통위 공식 보도자료에 대해 별도로 개별 의견을 내는 구조가 특이합니다. 여야 합의제 조직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죠. 대한민국에 이런 행정 조직은 없습니다.

또,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조직 구조는 정권을 누가 잡았느냐와 무관하게, 방통위 심사에서 조작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반증으로도 생각됩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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