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정국' 초긴장…여·야·청 치킨게임 현실되나

"위헌 소지 여전해"…朴, 국회법 거부권 행사 기울어
현실화되면 당청관계 파탄 …행정부·입법부 충돌도
재의결 안하면 野 강력 반발 뻔해…대치정국 불가피
朴 거부권 행사 안할 수도…"정치적 실익 크지 않아"
  • 등록 2015-06-16 오후 5:26:42

    수정 2015-06-16 오후 5:26:42

박근혜 대통령.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이제부터가 하이라이트다. 여의도 정가에 더욱 짙어진 ‘거부권 정국’ 전운은 당청 간이든 여야 간이든 누군가 치명상이 불가피한 메가톤급 폭발력을 지녔다. 청와대가 16일 정의화 국회의장의 국회법 중재안을 두고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만에 하나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그것만으로 당청은 ‘치킨게임’(한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 다 파국인 게임)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재의요구안을 표결에 부치느냐 마느냐도 초미의 관심사다. 이에 더해 행정부와 입법부의 정면충돌로 비화될 가능성도 상당하다.

현실화되면 당청관계 파탄…행정부·입법부 충돌

키를 쥔 청와대 기류는 거부권 행사 쪽으로 기울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면 (당초 국회법 개정안 원안에서) 딱 한 글자 고쳤던데 그렇다면 우리 입장이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정 의장의 중재안은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행정입법에 대해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는 국회법 개정안 문구 중 ‘요구’를 ‘요청’으로 바꾼 게 골자다. 강제성을 일부 완화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청와대는 아직 위헌 요소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다른 관계자는 “헌법 수호의 임무를 진 대통령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라고 했다. 헌법 제53조에 명시된 대통령의 재의 요구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박 대통령의 재의요구안은 국회 본회의에 ‘부의 예정’ 상태로 넘어오게 된다. 첫 번째 분수령은 이를 재의결할지 여부다. 본회의 상정은 여야 간 협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국회의장의 결단이 필요하다. 국회 관계자는 “결국 의사일정은 국회의장이 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의화 역할론’이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받는 이유다.

그럼에도 거부권 행사만으로도 싸움은 불가피하다. 가장 가시적인 다툼은 당청 간, 특히 박 대통령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간이다. 만약 여야가 재의결에 들어간다면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치명상을 입을 전망이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승부수가 실패한 꼴인 탓이다. 반대로 정 의장이 법안을 뭉개버린다면 유 원내대표의 입지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어쨌든 당청 관계가 파탄에 이를 것은 기정사실화 돼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경우에 따라 박 대통령의 탈당 혹은 유 원내대표의 사퇴까지 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여권 한 관계자는 “당 의원들 입장에서 박 대통령의 거부권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친박이냐 비박이냐를 가를 선택지 같은 것”이라고 했다. 계파 갈등이 추후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야당 한 관계자는 “재의결만 되면 우리로서는 꽃놀이패”라고 했다.

‘부의 예정’ 상태로 계속 방치되는 것은 유 원내대표와 함께 야당에게도 최악의 경우다. 자신들이 관철시킨 국회법 개정안이 박 대통령에 의해 완전히 부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 한 의원은 “국회의장은 상정하겠다고 했고 그래서 우리가 합의해줬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재의결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청와대와 야당 관계는 최악의 대치국면이 될 게 뻔하다.

가장 최근 거부권 행사가 이뤄졌던 2013년 1월에도 여야는 표결하지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법 개정안을 다시 검토해달라고 국회에 요구했을 때다.

朴 거부권 행사 안할 수도…“정치적 실익 크지 않아”

더 나아가 행정부와 입법부간 전면전으로 흐를 가능성도 크다. 국회 일각에서는 여야의 반응보다 정 의장의 ‘상정’ 결단을 더 주목하는 시각이 많다. 절차상 표결 권한은 정 의장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거부권 행사가 현실화되면 정 의장은 재의결을 강행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정 의장이 주도한 중재안이 여야 간 잇단 합의의 산물인 만큼 입법부 수장으로서 마냥 물러설 수는 없다는 측면에서다.

다만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청와대로서도 그 실익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 많아서다. 거부권으로 인해 여당 원내지도부가 사퇴한다면 청와대는 국정 운영부터 벽에 부딪힐 게 유력하다. 정치권 관계자는 “친박(친박근혜) 성향의 원내대표가 새로 앉는다고 해도 사태가 수습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일방적인 당청 관계에 대한 불만만 더 쌓일 것이란 얘기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박 대통령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민과 직접 관련이 작은 거부권 정국이 펼쳐지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더 떨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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