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 동작구에서 만난 택배 노동자 50대 이모씨는 5층 높이 다세대 주택에 명절 택배 선물을 배달한 뒤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이날 낮 최고기온은 35도. 9월에 접어들었는데도 여전히 무더운 날씨에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순간 ‘핑’하고 어지럼증이 돈다고 했다. 이씨는 “쓰러져도 택배가 늦으면 결국 내 책임”이라며 “우린 아파도 아프면 안 된다”고 말했다.
추석을 앞두고 연일 한여름 날씨와 같은 무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쏟아지는 택배 물량을 소화해야 하는 택배 노동자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제시간 내 배송하지 못하면 모든 책임이 자신들에게 전가되는 상황에 이들은 무리하면서도 일을 이어가고 있었다.
|
지난 11~12일 이데일리가 서울 곳곳에서 만난 택배 노동자들은 늘어난 택배 물량을 소화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택배 차량 안에는 과일·육류·생선 등 각종 추석 선물이 택배 상자에 가득 담겨 있었다. 30도 안팎의 무더운 날씨에 택배 노동자들은 거친 숨소리를 내며 각 배송지로 택배를 빠르게 옮기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구축 건물의 경우 무거운 상자를 번쩍 들어 계단을 통해 물건을 옮겨야만 하기도 했다.
이토록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추석 기간 택배 물량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번달 예상되는 택배 물량은 하루 평균 1850만 박스로 평시(1660만 박스)보다 11% 증가한 규모다.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강모(55)씨는 “평소엔 (주말 주문 물량이 배송되는) 화요일이 제일 바쁜데 (추석 기간은) 화요일보다 바쁜 날이 계속 반복된다고 보면 된다”며 “이렇게 많은 물건을 차에 싣는 것 조차 힘들다”고 설명했다.
|
택배 노동자들은 이같은 늦더위에도 택배사들의 대책이 없다고 토로했다. 물건을 싣는 물류센터의 경우 냉방시설이 있는 곳이 드물고 폭염에 대비할 장비들은 노동자들 사비로 구매해야 하는 실정이다. 서울 노원구에서 근무하는 이모(54)씨는 “올 여름 제일 더울 때 아이스크림 하나 줬는데 그게 유일한 폭염 대책이었다”며 “차량 선풍기부터 여름 용품은 다 사비로 사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특수고용직인 택배 노동자들은 할당된 택배 물량을 소화하지 못할 경우 모두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배송이 늦어져 무더운 날씨에 육류·과일 등이 상하면 택배 노동자들이 모두 변상해야 하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이 보장하고 있는 작업중지권이 적용되지 않아 폭염·폭우·푹설 등에도 일을 중지할 수도 없다. 지난 7월 경산의 한 택배 노동자는 폭우 속 배송을 하다 사망하기도 했다.
택배 노동자들은 최소한 작업중지권을 보장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선범 전국택배노조 정책국장은 “경산 노동자 사망 당시에도 배송이 어렵다고 하니 원청에서 다른 곳부터 하라고 계속 지시해 위험한 상황 속에서 계속 일해야만 했다”며 “작업을 더이상 할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