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직장 생활 8년 차인 김평민(38)씨. 그가 집을 사는데 걸린 시간은 꼬박 8년. 서울의 3억원짜리 중소형 아파트다. 그것도 집값의 40%는 대출을 끼고 있다. 하지만 김씨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 아직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 주변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들은 7년도 안돼 승용차를 신형으로 바꾸고, 자녀를 영어유치원과 사립초등학교에 보냈지만 김씨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집 사는데 전력 투구했기 때문이다.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주택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소유 개념이 희석되고 거주 개념이 확산되면서 매매시장보다 임대시장으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 그나마 매매시장은 투자 수요가 크게 줄고 실수요 위주로 재편되면서 거래량이 늘어도 집값이 오르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통계청과 KB국민은행 시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택시장은 2008년 말을 기점으로 이후 크게 위축됐다. 2003년부터 2008년 말까지 6년간 전국 집값은 27.9% 뛴 반면 2009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6년간은 13.8% 오르는 데 그쳤다. 서울의 경우 2008년 말 이전 집값이 무려 46.15% 상승했지만 이후 6년간은 오히려 1.01% 떨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가 컸고, 주택 보급률이 100%를 막 돌파한 것도 그해 말이다.
이후 시장은 매매에서 임대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집을 갖고 있더라도 임대를 주고 다른 곳에 집을 빌려 사는 가구가 크게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자가점유율은 1970년대 71.7%에서 2012년 53.75%로 급감했다. 그만큼 임대차시장이 확대되고 있다는 얘기다.
전세에서 월세(보증부 월세 포함)로의 전환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한국감정원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11월까지 확정일자를 받은 전·월세 거래 물량 중 월세 비중은 41.3%로, 사상 처음 40%대를 넘어섰다. 전셋값이 치솟으면서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지난해 말 사상 최초로 전국 평균 70%를 돌파했다. 전셋값이 급등해도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사라져 집 사기를 꺼리는 심리가 커진 것이다. 하지만 관련 정책과 산업은 시장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채 뒤따라가는 형국이다. 당연히 주택시장 혼란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상영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의 월세 전환 속도를 늦출 방안들이 제때 나오지 못했고, 전세 수요의 매매 전환을 위한 부동산 규제 완화 타이밍도 놓친 감이 있다”며 “지금이라도 서둘러 월세시스템을 마련해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