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최근 집안 행사에서 친척들 사이에 뜬금없이 요즘 금융당국이 밀고 있는 성과주의 얘기가 나왔다. 금융하면 막연히 집 근처 은행 지점을 먼저 떠올릴 정도로 금융에 큰 관심을 두지 않던 친척들이 갑자기 ‘성과주의’란 무거운 주제에 한 마디씩 거들고 나선 건 올초 은행에서 희망퇴직한 삼촌 때문이었다. 삼촌 나이가 올해 쉰 두 살이니 정년을 한참 앞두고 나온 셈이다. 임금피크제가 시작되는 시점까지 버틸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고 했다.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을 바에야 그냥 퇴직금이라도 두둑이 받는 게 낫지”
성과주의 얘기가 나온 건 이 지점에서였다. 실적 경쟁 때문에 야근을 밥 먹듯 해도 정년 채우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과연 성과주의가 도입되면 정년 보장은 차치하고 은행들이 두둑한 봉투까지 챙겨줘 가며 희망퇴직에 나서겠느냐는 것이었다. 성과주의가 제도적으로 저성과자를 걸러낼 수 있도록 설계된 만큼 은행들이 미리미리 저성과자들을 줄이는 식으로 인력 관리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 성과주의 도입을 반대하는 금융노조가 지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추측은 섣부른 기우일 수 있다. 능력에 관계없이 매년 자동으로 임금이 오르도록 설계된 지금의 호봉제 기반의 임금체계가 금융사의 경쟁력을 갉아먹은 측면도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금융위원회가 성과주의 도입을 금융개혁 1순위로 정한 뒤 금융사 대부분이 이를 따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정작 본질은 외면하고 신입사원의 연봉을 깎으려는 것과 같은 지엽적인 문제에만 매달리고 있단 생각이 든다. 성과주의 도입 취지의 핵심은 직원을 능력대로 평가해 보수나 인사에서 혜택을 줘 금융사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금융사 안에서도 고급 고령 인력을 사장하는 사례가 많다. 예컨대 은행 대부분 임금피크제도를 갖추고 있지만 정작 이를 통해 은행에 남아 있는 직원은 거의 없다. 대신 은행들은 매년 큰돈 들여가며 희망퇴직을 통해 임피제를 앞둔 직원들을 줄인다. 정년 60세는 꿈같은 얘기다. 신입사원 연봉을 깎은 돈으로 희망퇴직에 쓰는 것보다 있으나마나 한 임금피크제를 먼저 손질하는 게 금융사 경쟁력에 더 도움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