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구 한 획정위원은 자체 지역구 수 범위(244~249석)를 정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헌법재판소의 2:1 인구편차 기준을 244~249석에 맞추면 농·어촌 지역구 수는 줄어들 수 밖에 없는데,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반발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특히 새누리당이 이를 사실상 당론으로 정하면서 부담은 더 커졌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 획정위원은 이번에도 정치권의 게리멘더링(특정 후보나 정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이 생길 수 있음을 걱정했다. 사상 처음 획정위를 국회 외부에 둔 의미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획정위가 2일 끝내 내년 총선 지역구 수를 결정하지 못한 것은 정치권의 압박과 무관치않아 보인다.
획정위 측은 “헌재가 제시한 인구 기준과 동시에 농어촌의 대표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획정위 측은 그동안 “지역구 244~249석 사이가 헌법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라고 밝혀왔다. 이날 7시간 넘는 격론에는 헌재의 기준 외에 정치권의 목소리도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다.
획정위는 선거구를 정하는 과정에서 정치권의 이해관계를 배제하고자 여야 스스로 결정한 기구다. 과거 정치인들끼리 획정하다보니 게리멘더링 폐해가 너무 컸던 탓이다. 획정위는 사실상 국회로부터 입법권을 이양받은 기관인 셈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획정위 독립의 의미는 안중에도 없는 기류다. 정가 한 관계자는 “당장 ‘밥그릇’이 걸려있는데 원칙이란 걸 따질 수 있겠느냐”고 했다.
특히 농어촌 의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국회 농어촌·지방 주권지키기 의원모임은 곧장 성명을 내고 “여야 대표가 농어촌과 지방 선거구 획정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회담을 적극 수용하고 조속히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도 “농어촌 지역구를 줄일 수도 없고 줄여서도 안 된다. 다행히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남아있다. 열흘 후인 13일 전까지 여야는 알찬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이장우 대변인)고 강조했다.
정가 일각에서는 첨예한 이해관계 탓에 해를 넘겨 획정안 정할 가능성도 벌써부터 거론된다. 이는 그리 이례적인 것도 아니다. 총선 한두달 전 여야간 졸속 타협은 과거 4년마다 정치권에서 되풀이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