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간병에 3.9억원"…빚내고 일도 포기하는 미국인들

간병인 비용 부담↑…24시간 고용시 연 3.9억원 지출
4명중 1명 ‘돌봄’ 필요…3명중 1명 1년 버틸 돈도 없어
상속재산, 물려주는 돈 아닌 장기 요양비…인식 변화
간병인은 결국 남, 고용해도 불안…정신적 부담도↑
  • 등록 2024-09-06 오후 3:34:05

    수정 2024-09-06 오후 5:30:41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네브래스카주에 거주하는 크리스틴 살하니(66)는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는 77세 남편을 집에서 돌보고 있다. 그는 24시간 간병을 위해 5명의 간병인을 고용하고 매년 약 24만달러(약 3억 2000만원)를 지출하고 있다. 살하니는 “언젠가부터 남편이 혼자서는 씻지도 옷을 입지도 못해 도움이 필요해졌다. 간병인을 고용할 수 없었던 코로나19 팬데믹 때가 가장 힘들었다. 남편을 홀로 둘 수 없어 잠도 잘 수 없었다. (남편이 아프고 난 뒤)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느낀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미국의 많은 가정이 늙어서 거동이 불편해지거나 아픈 가족을 돌보느라 신체적·재정적·정신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증가하면서 미국 가정에서 ‘돌봄’ 비용이 새로운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은퇴자협회(AARP)에 따르면 미국에선 매일 1만 1000명이 65세가 되고 있다.

(사진=AFP)


고령 가족 ‘돌봄’ 재정부담↑…24시간 간병 연 3.9억원

의료 기술 발전으로 인간의 기대 수명은 늘었지만, 나이가 들면 지속적인 의료적 도움이 필요해 관련 지출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환자가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집을 개조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간병비가 가장 큰 부담이다. 장기요양 보험회사인 젠워스에 따르면 지난해 미 전역에서 중재기관을 통해 고용된 가정 건강 보조원에게 지급된 중간 비용은 시간당 33달러로 집계됐다. 2015년 시간당 20달러와 비교하면 65% 급등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추산하면 24시간 간병이 필요한 경우 중간 비용은 연간 29만달러(약 3억 8500만원)에 이른다. 요양원에서 개인실을 사용할 경우와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 지출이다. 보조 생활 시설의 개인실과 비교하면 네 배에 해당한다.

재정적 부담은 가족들의 삶에도 큰 변화를 주고 있다. WSJ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양한 사례를 소개했다.

일리노이주의 캐롤린 브루지오니(59)는 2021년 아버지가 걸을 수 없게 된 이후 24시간 간병을 위해 매달 1만 3000달러(약 1728만원)를 썼다. 아버지가 저축한 35만달러(약 4억 6500만원)와 사회보장 수당 월 4000달러(약 532만원), 1년 전 자격이 생긴 재향군인 수당 등으로 간병비를 충당했다.

하지만 올해 초 저축이 바닥나자 결국 37만 5000달러(약 5억원)짜리 집을 담보로 최대 한도인 8만 5000달러(약 1억 1300만원) 대출을 받아 간병비를 지불했다. 대출 잔액이 4만 5000달러(약 6000만원) 남았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브루지오니는 “2021년 하루 225달러(약 30만원)였던 간병비가 올해 350달러(약 47만원)로 올랐다. 몇몇은 하루 450달러(약 60만원)를 내겠다는 다른 가족에게 빼앗겼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캘리포니아주의 셰릴 오어는 치매에 걸린 아내의 간병비와 주택 개조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은퇴를 미루기로 했다. 플로리다주에 사는 트레이시 램은 “엄마를 돌보려고 사업을 접었다”고 말했다.

WSJ는 “최근 몇 년 동안 가정에서 지출되는 유료 간병비가 급증했다”며 “부모는 물론 배우자, 성인 자녀, 형제·자매 등을 돌보기 위해 삶을 멈추고 끊임없는 걱정과 씨름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고 짚었다.

4명중 1명 ‘돌봄’ 필요해져…3명중 1명은 1년 버틸 돈도 없어

이러한 추세는 대다수 미국인들이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늙어가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AARP 조사에 따르면 50세 이상인 미국인 가운데 77%는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최대한 오래 살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많은 가족들이 요양원 방문이 금지되는 불쾌한 경험을 겪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WSJ는 부연했다.

보스턴칼리지의 은퇴 연구센터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고령자 중 약 4분의 1은 결국 최소 3년 이상 ‘상당한’ 지원과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명 중 1명은 어느 시점에 가족 등의 도움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연구센터의 안치 첸은 “사랑하는 사람이 24시간 돌봄이 필요로 하더라도 가족들은 약 절반 정도의 시간만 제공한다. 그들에겐 매우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라며 간병인 고용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연구센터는 또 은퇴자의 약 3분의 1은 최소한의 요양비, 즉 1년조차 감당할 재원이 없다고 우려했다. 젠워스의 데이터에서도 65세 이상 성인의 약 10%만이 장기요양 보험에 가입해 일부 재택 요양비를 충당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호자들을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 ‘워킹 도터’(Working Daughter)의 리즈 오도넬 창립자는 “상속 재산은 더이상 자식들에게 물려줄 돈이 아니라 장기요양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충분한 돈을 갖고 있다는 개념으로 새롭게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AFP)


간병인은 결국 남, 고용해도 불안…정신적 부담도↑

정신적 부담도 문제다. AARP 조사에 따르면 가족 중 돌볼 환자가 있는 구성원 10명 중 4명은 일상생활에서 거의 또는 전혀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다. 특히 간병인은 아무래도 ‘남’이기 때문에 가족들을 만족시키기 힘들다는 점도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부부인 경우 함께 늙어가는 처지여서 간병에 따른 신체적 부담도 크다.

살하니는 “2019년 이후 간병인을 총 27명 채용했다”며 “어떤 간병인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졸고 있길래 해고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남편을 요양원에 맡기는 것에 대해 “나는 할 수 없다. 한밤 중에 잠에서 깨어나 보호자 없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힘들다고) 내 기준을 낮추고 남편을 보살피는 것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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