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 지도자로 손꼽히는 프랭클린 그래함(71) 목사는 1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제 코로나도 거의 끝났으니 북한의 문이 다시 열리기를 바라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한민국 기독교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가 50주년을 맞았다. 1973년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닷새 동안 전국에서 모인 334만 명이 서울 여의도 광장을 가득 메웠다. ‘3천만을 그리스도에게’라는 주제로 대전과 서울에서 열린 전도대회는 총 440만 명이 참여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대회를 이끈 주강사는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로 알려진 미국 남침례교 목사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이었다. 바로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의 아버지다.
50년 전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가 오는 6월 3일 서울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다. 이번 대회의 주강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가 맡는다. 그래함 목사는 “저는 아주 작은 메시지를 전하러 한국에 왔다”며 “바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50년간 한국이 많은 변화를 맞이했고 세계 역시 변했다며 “한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류애적인 사랑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우리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셔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평안으로 우리를 채워주실 것”이라며 “앞으로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신다면 한국에 여러 차례 방문할 계획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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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래함 전도대회’는 한국 교회의 부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3년 집회를 기점으로 수많은 대중들이 교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교회들이 빠른 속도로 성장을 했고, 사회발전도 함께 이뤄졌다. 1973년 5월까지만 해도 1400개에 불과하던 서울의 교회 숫자는 그 다음해에 2000개로 늘었다. 1970년에 219만7336명이었던 신도수는 전도대회를 기점으로 1978년에는 375만8930명이 됐다.
당시 대회를 이끌었던 빌리 그래함은 ‘미국의 목사(America’s pastor)’로서 평생 동안 전 세계 185개국에서 400번이 넘는 전도집회를 통해 사람들에게 설교를 전했다. 그는 2018년 2월 21일 노스캐롤라이나 몬트리트에 있는 그의 집에서 9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는 빌리 그래함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비록 젊은 시절 한때 방황했었지만, 예수님께로 다시 돌아온 후 목회자의 길을 선택했다. 1979년에 구호단체인 ‘사마리안 퍼스(Samaritan’s Purse)’의 대표로 취임해 지금까지 전 세계의 어려운 나라들을 돕고 있다. 2001년부터는 빌리 그래함 전도협회의 대표로서 전 세계를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있다. 미국의 정재계와도 친분이 두터운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회담이 성사되도록 도운 이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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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세대에는 시련이 있기 마련이지만, 구원의 메시지는 세대를 관통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래함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안고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다”며 “그것이 모든 세대를 향한 그리스도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50년 전 대회에서 통역을 맡았던 김장환 목사(89·극동방송 이사장)는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의 산증인이다. 김 목사는 “죽지 않고 살아서 이런 대회에 참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며 “당시 39살이었는데 지금은 89살이 됐다. 50년 후에도 전도대회에 함께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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